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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욱 Jun 12. 2019

비즈니스 도핑

Doping Economy Part I.

역사상 가장 큰 스포츠 스캔들로 꼽히는 렌스 암스트롱의 몰락.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촉망받던 사이클리스트 렌스 암스트롱. 그는 20대 중반 고환암 3기를 선고받지만, 암을 이겨냄과 동시에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그 뒤 7년간 리그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가 금지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진다. 그는 모든 명예를 잃었다. 인간승리의 아이콘에서 반칙의 아이콘으로의, 처절한 몰락.


하지만, 스포츠의 생태계에 이해가 깊은 사람들 사이엔, 렌스 암스트롱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그 당시 정상 수준에서 경쟁하던 모든 사이클리스트들은 렌스 암스트롱이 사용한 금지약물을 사용했다. 모든 체계적인 관리 하에, 최상의 심폐기능 효율을 위해. 렌스 암스트롱은 그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선수였을 뿐이라는 것.


장거리 사이클링은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스포츠로 꼽힌다. 몸에 가해지는 과부하가 비견될 만한 스포츠가 없을 정도.  의료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그러한 스포츠에 참여한다면, 금지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체에  해롭다.


렌스 암스트롱이 활동하던 당시, 도핑을 하지 않은 선수는 엘리트 레벨의 경쟁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는 그 리그의 생태계였던 것이다.



증권가와 각성제.


도파민은 패턴인지에 관여한다. 높은 도파민은 수학능력을 향상하고, 정보를 가로지르는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을 강화한다. 업무에 대한 집중력과 동기감 또한 상승시킨다. 도파민이 높은 개체가 증권가의 환경에 더 잘 적응할 것은 분명할 것이다.


도파민을 상승시키는 작용이 큰 약물은 중독과 의존의 위험이 높다. 계속 그 약물을 찾게 되고, 그 약물이 없이 행동하는 능력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 그렇기에, 약물의 도파민 상승효과가 클수록 사회적인 통제가 강해진다.


80년대 미국. 대표적인 마약류 각성제인 코카인이 국제 카르텔을 통해 미국 사회에 대량 유입된다. 코카인의 남용은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코카인은 두뇌의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농도를 일시적으로 상승시킨다. 자신감과 각성감이 급상승한다. 하지만, 중독의 위험이 가장 높은 약물로 꼽히기도 하며, 인성과 사회관계를 빠르게 파괴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80년대의 미국 증권가는 공격적 M&A의 시대로 회고된다. 주식과 경영권의 관념이 흐릿한, 하지만 단단한 실물 자산을 지닌 주식회사가 적지 않았다. 증권업계는 이러한 회사의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입해, 이사회의 의결권을 차지한 뒤, 회사를 분해해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완전히 합법적인 행동이지만, 말 그대로 기업을 파괴하는 ‘소시오패스’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은 코카인 남용자의 두드러진 행동 양태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는 코카인 사용이 빈번했는데, 거물급의 인물이 중독으로 파멸한 이야기가 후일 뉴스나 가십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코카인 사용은 단기적으로 분명한 이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루 종일 모니터의 숫자와 씨름하는 지루한 증권 업무에서, 큰돈을 벌 수 있는 패턴이 명확하게 인지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판단에 굉장한 자신감과 확신이 느껴진다면? 무엇보다,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고 재밌다면. 비난받아 마땅한 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그러한 행동양태를 지닌 개체가 번성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또 다른 각성제에 의해 발생했다는 분석이 있다. 바로 ADHD 처방약인 애더럴이다. 애더럴은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아, ADHD를 진단받은 학생들에게 처방되는 경우가 많다. 약을 먹으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주제에도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놀이 본능과 사회화 과정을 억제하며, 정상적인 신경계 형성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숫자와의 씨름인 단조로운 증권업무. 애더럴의 사용은 층층이 쌓인 수식을 다루는 증권업무에 집중하는 능력을 증가시킨 모양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문제가 된 것은, 프랙탈처럼 뻣어나가며 부실함을 더해나간 채권이다. 말 그대로 수학적인 미로이다. 이러한, 정교하고 복잡한, 하지만 본질에서는 완전히 벗어나버린 재앙적인 패턴을 파생시킨 증권가의 행동양태는 애더럴의 영향을 받았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잘못된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좁은 과제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상태. 애더럴의 약성은 하기 싫은 공부나, 지루한 업무를 해치울 힘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해야 할 일과 잘못된 일을 구분하는 능력은 감소시킨 모양이다.



테스토스테론과 기업가.


TRT : Testosterone Replacement Therapy.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신체와 정신에 주는 영향이 막대하다. 테스토스테론은 정신적/신체적 남성성을 발현시킨다.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근육량과 활력을 늘리며, 공격성과 자신감을 상승시킨다.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높을 시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보이는 특성들이 있다. 진취적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근거가 없을지라도 자신감이 있다. 신체와 정신에 에너지도 많다. 높은 테스토스테론은 기업가에게 유리한 성격적 특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유추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돈을 지불한다면, 테스토스테론을 대체하는 의료 서비스인 TRT 시술을 받을 수 있다. 성공을 이뤄 경제적인 자유를 얻은 40~50의 기업가가, 20대 중후반 수준의 테스토스테론을 유지한다면? 경쟁 기업의 경영자에 비해 에너지가 더 많고, 진취적이며, 자신감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가 TRT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짐작한다. 15년 전의 제프 베조스 TED 강연과, 지금의 인터뷰를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외모에서 짐작되는 나이는 훨씬 젊어졌으며, 몸매도 더 다부지고, 자신감도 더 넘쳐 보인다. 확실히 더 ‘남성적인’ 특성을 띤다.


모든 인터넷 커머스를 압도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소매상까지 위협하는 규모로 성장 중인 아마존의 기세. 더 나아가, 일론 머스크와의 로켓 경쟁에까지 참여하는 경쟁적인 태도. 전형적인 테스토스테론의 행동양태라는 의혹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미국 최고의 인기 미디어 콘텐츠로 떠오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Joe Rogan Experience)’. UFC 해설자로 이름을 알린 조 로건이 모든 분야의 흥미로운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이다. 조 로건은 모든 종류의 퍼포먼스 인핸서를 거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의료, 영양, 스포츠 전문가와의 인터뷰는 콘텐츠의 큰 부분을 이루기도 한다.)



조 로건은 본인이 TRT를 이용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효과와 이점에 대해서도, 오남용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의견을 밝힌다.


이러한 추세로 보았을 때, 경제적 자유를 얻은 기업의 경영자가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TRT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의료적인 도움을 받는 일이 점차 보편적이 될 수도 있으며, 기업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바이오해킹 무브먼트.


앞선 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이 약물이나 의료기술을 통해 퍼포먼스를 향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퍼포먼스를 향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론을 나열해, 위험성이 가장 적고, 가장 효과가 크며, 가장 목적에 적합한 것들을 추려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토대로, 자신이 지닌 유전적인 단점을 보완하고, 주요한 능력을 최대한 확장하는 안정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바이오해커라 부른다. 운동능력 향상, 몸매 관리, 두뇌능력 확장, 안티에이징 등. 인간의 신체능력을 모든 방향으로 확대하기 위한 실험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일종의 ‘건강 오타쿠’라 보아도 얼마간 정확할 수 있다.


도파민의 양을 늘리고 싶다면? 도파민의 정상적인 활동을 가로막는 신체 조건을 분별해 해결한다. 도파민의 재료를 충분히 확보한다. 도파민의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여러 보충제를 병용(stack)한다. 미량의 니코틴을 사용한다. 등등.


이처럼 바이오해킹의 방법론은 전방위적이며, 인체에 대한 시스템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정상적인 기능의 복원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조작을 통한 기능의 최적화를 노린다. (말 그대로 ‘해킹’이다.) 물론, 필요하거나 원한다면, TRT나 줄기세포 주입과 같은 적극적인 방법의 차용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 벨리의 지식근로자들을 최상위 리그의 운동선수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가 근육으로 경쟁한다면, 지식근로자는 두뇌로 경쟁한다. 이러한 이유로, 실리콘 벨리에서는 두뇌 기능을 향상하는 약성을 지닌 ‘누트로픽’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는 중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포 아워 바디> 등의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잘 알려진, ’실리콘 벨리의 슈퍼맨’ 팀 페리스의 첫 사업은 누트로픽을 조합해 상품화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인체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 ‘인간 기니피그’ 바이오해커로 스스로를 상품화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온건한 접근법과 균형 잡힌 습관을 강조한다.)


기술산업의 세계적인 경쟁에서, 선두 리그인 실리콘 벨리는 이미 두뇌기능의 확대를 시도하는 중이며, 이를 상품화한 기업들이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Neurohacker Collective, Bulletproof, Onnit 등.) 분명한 것은, 자신이 하는 어떤 일이라도, 의료기술, 약학, 영양학 등의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통해 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 여지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선두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 도핑을 해야 했던 렌스 암스트롱의 리그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을 통해 두뇌기능을 확장해야 하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좋든 싫든, 옳던 그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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