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정리는 그나마 자신 있고 좋아하는 일이다. 집이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으면 내 마음 또한 평온해지고 숙제를 다한 기분이다. 그제야 비로소 날 위한 무언가를 할 수가 있다. 반대로 정리가 안되어있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다. 아이를 낳고 더 심해졌다. 다행히 아이에게 장난감보다는 몸으로 놀기를 선호하는 육아 마인드가 남편과 잘 맞아서 아이 있는 집 치고 치울 거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어지르는 건 '타짜의 밑장 빼기' 만큼이나 신속하다. 아이에겐 우리 집 물건 모두가 장난감이니까. 하나 정리하고 있으면 저쪽에서 다른 걸 어지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의 상황이 많다 보니 재빨리 치워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도 생긴 듯하다.
요즘은 가전에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감사히 모시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가전하나를 들이면 그에 따라 세부적으로 관리할 리스트가 늘게 된다. 이모님을 들이면 이모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한다는 거다. 물론 이모님들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별게 아니지만 뭔가 집안일을 하나를 없애기 위해 잡일 세네 가지를 또 해야 하는 마치 이모님 시다바리가 된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든다.
세탁기 이모님 (드럼)
v고무패킹에 고이는 물기 제거하기
v세제통 빼서 투입구 부분 건조 시키기
v주기적으로 통세척하기, 배수 밸브 비우기, 세제통 닦기.
건조기 이모님
v건조 후 필터에 먼지 제거하기
v건조기 내부에 생기는 먼지 한 번씩 청소하기
v주기적으로 열풍건조 돌리기
v 3차 필터에 먼지 제거하기
먼지를 제거할 때 주변에 엄청난 먼지가 일어나는데 10퍼센트는 내 코 속으로 비워지는 듯하다. 먼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때는 깔끔하게 버려지지 않고 쓰레기통 주변에 또 한가득 떨어진다. 그렇기에 '먼지필터 비우기'는 '쓰레기통 주변 청소하기'와 한 세트가 된다. 필터에 먼지를 직접 청소기로 빨아들일 수도 있는데 이러나저러나 청소기는 가지고 와야 한다. 그래서 청소기를 세탁실에 둘까도 고민했지만 먼지와 습기 가득한 곳에 내 소중한 '다이슨씨'를 두기가 왠지 꺼려진다.
나의 최애 가전 무선 청소기 여사님
v먼지통 비우기
v 주기적으로 내부 분해해서 세척 & 건조 & 재조립하기.
최애템이긴 하지만 관리를 가장 게을리하고 있는 가전이다. 이유(핑계)는 수시로 사용하기 때문에 분해&세척&건조의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로봇청소기 이모님
v 이동경로 장애물 제거해 드리기
v 먼지통 비우기
v 걸레 빨기
v 걸레질용 물통 비우기 , 건조시키기
부모님 댁에 방치되어 있다가 우리 집으로 입양된 가전이다. 가전들 중 뒤치다꺼리 원탑이다. 로봇청소기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주변 정리를 하다 보면 이 시간에 내가 직접 청소기 돌리고 말지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가전인데 남편의 기계 욕심을 충족시켜 주는 용도로 보인다.
가습기 이모님
v아침마다 물통에 남은 물 비우고 건조시켜놓기,
v3일에 한 번씩 가습기 세척하기
이 또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지라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습기 관리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른의 삶이란 참 애처롭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가습기 관리를 안 해도 되서라니...
제습기 이모님
v사용 후 물통 비우고 건조해 놓기
가장 마지막에 들인 가전인데 더 이상 이모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 않아 구입을 결사반대 하였으나 남편이 독단적으로 구매를 한 애증의 가전이다. 마음대로 산 대신 관리는 남편보고 다 하라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그 몫은 나의 것이 되었다. 남편은 주로 물통을 비운 후 대부분 화장실 구석에 똑바로 세워둔다. 그렇게 되면 바닥 부분에 물기는 시간이 지나도 보란 듯이 제자리에 촉촉하게 남게 된다. 결국 조용한 탄식(주로 썅욕)과 함께 내 손에 의해 베란다로 들려서 완벽한 건조를 위해 뒤집어져 자리하게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끝도 없다. 그만 쓸랜다. 정말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지 화가 나려다가 직접 냇가에서 빨래하고 가마솥에 불 피워서 요리하던 옛 분들이 나를 보면 배부른 소리라며 화를 낼 것 같기도 하다.
집안일에 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탁기(통돌이)에 비워줘야 하는 먼지 필터가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거나 생닭을 직접 맨손으로 요리하고 따로 위생관리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가도 생각을 달리 하곤 한다. 몇 년 묵은 먼지와 함께 세탁된 옷을 입고 식중독 유발 균들을 섭취하며 생활하는 그들에게는 어떠한 질병이나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혈색 좋은 피부의 광만이 빛나고 있었다. 나도 좀 내려놓고 대충 하겠다며 마음을 고쳐먹지만 오늘도 나는 세탁물을 뒤집고 빨래망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