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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Dec 20. 2023

미국 vs. 캐나다, 캐나다로 결정했다.

미국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미국에 1년 살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생활비’를 조사했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이동하고, 간단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생활비 정보가 필요했다. 넓은 땅 미국, 지역과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따라 생활비의 ‘정도’는 다양했다. 공개된 정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렌트비로 월 1,500불, 중고차구입/보험료 15,000불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차량비를 월평균으로 계산하고, 최소한의 식비와 주유비까지 포함하면 한 달 예산으로 4000불은 필요했다. 아이가 공교육을 무료로 받기 위해서는 엄마가 어학연수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학비와 의료비는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수입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때마침 켄터키 주에 살고 있는 지인이 한국에 방문했기에 만나러 갔다.  


“아이를 데리고 1년 정도 미국에 머물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궁금해요. 되도록이면 생활비를 벌면서 체류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해요. 그런데 비자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아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비자 없이 일을 하거나 시키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사업자들도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을 꺼려하죠. 위험하거든요.”


비자(VISA)를 간과했었다. 오랜 기간 체류하고, 일을 하려면 취업비자가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말이다. 저녁이 밤이 될 때까지 대화를 나누며 미국체류에 필요한 정보와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비자와 체류비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미국 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미국에 가기 위한 비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고 더욱 낙담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했다가 비자거절당했다는 내용이 부지기수였다. 비자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나든, 아이든 누군가 학교를 다니면서 1년을 지내기 위해서는 학비와 생활비로 최소 1억은 예상해야 했다. 마음 편히 1억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리해서 대출을 낼 수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그 금액을 상환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다고 포기도 싫었다. 


종잣돈을 모으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와 왕복 항공권 300만 원, 집렌트 및 식비 400만 원, 차량렌트 및 유지비 300만 원, 대략 1천만 원 이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1천만 원이 모이면 바로 티켓팅을 하고 떠나고, 그 이후에 생각해도 괜찮다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활비를 현지에서 벌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문득 캐나다를 떠올렸다. 대학 때 수강했던 ‘영미문화와 의사소통’이란 강의에서 미국은 이민자의 ‘용광로’, 캐나다는 ‘샐러드 볼’이라고 표현을 했던 기억이 났다. 미국은 이질적인 문화를 억압하고 배척하지만, 캐나다는 형형색색의 이민자들이 자기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배운 기억이 났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대륙에 있으면서 미국보다 치안도 좋고, 인종차별도 덜하고, 시민의식이 발달한 곳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캐나다를 다녀온 지인들에게 캐나다에서의 삶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다시 한번 또 가고 싶다는 반응이 인상적이었던 것도 좋았다. 비자가 어려운 미국대신 캐나다로 방향을 틀어보았다.   




2021년 7살이 된 아이를 잘 케어하기 위해 14년 다닌 첫 직장을 관두었지만, 퇴사 후 3개월 만에 덜컥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그 회사는 첫날부터 야근을 해야 할 만큼 너무나 일이 많고 바빴다. 업무시간은 물론 휴게 시간에도 쉬기 어려웠다.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결재서류는 줄지 않았다. 일 더미에 쌓여 있는 사이 어느새 아닌 1학년이 되어 있었다. '아이 1학년 때 1년 살이', 그날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다시 현실에 꿈을 빼앗길 판이었다. 

 

2022년 3월 코로나 오미크론 감염자가 확대되던 때 회사 사무실에도 확진자가 하나둘씩 발생했다. 3월의 마지막 주 기침이 나더니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너무 아팠다. 자가진단키트를 해 보니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 전날 실시했던 PCR 검사의 결과도 확진이었다. 나와 함께 잤던 아이 역시 코로나 양성반응으로 등교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와 아들 둘이서 집에서 일주일간 격리를 하게 되었다. 3일 간 통증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가 미각을 느끼지 못할 무렵, 남은 격리기간 동안 캐나다행을 알아보기로 했다.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캐나다행 왕복 항공권과 한두 달 머물 체류비 정도는 있었고, 가능하다면 1년을 지낼 수 있는 비자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시댁에 머물며 매일 현관 앞에 식재료를 배달해 주던 남편에게 현관문 너머로 말을 건넸다. 


“오빠 캐나다, 가고 싶어.” 


늘 외국에서 살고 싶어 하던 남편, 아이가 두 개 이상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이었다.  


“한번 알아보지? 방법이 있는지?”


포탈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이미 캐나다에 살고 있는 유학생, 워킹홀리데이청년들, 이민 가신 분들의 일상 포스팅과 이민공사 및 유학원의 광고가 보였다. 캐나다 삶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있었지만 당장 내가 궁금한 건 없었다. 궁금했던 것은 비자와 현지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친척모임에서 뵀던 고모가 떠올랐다. 아빠의 사촌동생, 밴쿠버 인근에 살고 계시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이 두 가지 정보를 가지고 고모께 연락을 닿게 해 달라고 아빠께 요청드렸다. 며칠 뒤 고모와 연락이 닿았다. 딱 한번 얼굴을 뵈었지만, 조카 특권으로 궁금한 것을 곧장 여쭈어 보았다. '캐나다에 1~2년 머물고 싶은데, 생활비를 벌면서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드는지' 등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여쭤 보았다. 당시 둘째 임신 초반이었던 터라 캐나다에서 출산까지 하게 되면 진료방법과 의료비는 얼마나 드는지 까지 여쭤보았다.

 

고모는 ‘취업비자(work permit)’를 받고 들어오면 자녀 학비와 의료비는 무상으로 체류가 가능하다고 하시며 고모가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에서 직원을 뽑고 있는데 관련 경력이 있으면 일자리를 제공하여 비자를 지원해 주실 수 있다고 해 주셨다. 잠깐 와서 한 두 달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도 하셨다. 


남편과 상의를 했다. 남편은 여행보다 계획했던 대로 1~2년 캐나다에 있는 것이 낫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이 현재의 회사를 그만두고 고모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취업비자를 받아 생활비도 벌면서 함께 지내는 편이 좋겠다고. 다행히 식당경력도 있어서 비자 조건에 해당되었다.  


오랫동안 꿈에 머물러 있던 캐나다행이 어느새 눈앞에 실현될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이와 단 둘이 아닌 온전한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다니 더욱 괜찮았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캐나다에 입국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고모께 취업비자를 받겠다고 말씀드리고, 비자절차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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