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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일은
​기분이 전부다

내 성과는 내 기분이 하는 일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해결되고 묻히고 잊힌다.

가장 힘든 건 사람 사이의 일인 것 같고, 회사업무나 공적인 활동은 섬세함 신속함 책임감 등으로 설명되는 것 같다. 물론 사람 사이의 일에서도 꼼꼼하고 빠르고 잘하는 게 필요하지만 내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진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 부분이 편해지고 능숙해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나이에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며 더 자책을 하기 일쑤다. 

그래서 '관계'에 대한 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팔리고 있다. 상대방의 무례에 이렇게 대처해라, 상대만 생각하지 말고 나를 생각해라, 나와의 관계, 연인 또는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눈치없는 상사와의 관계 대처법 등 대상을 좁혀서 관계대응방식을 다룬 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온다. 독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책이 통쾌하게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면 약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읽어볼 만하다.

그렇다면 그 책을 쓴 저자와 그 책을 만든 편집자는 '관계'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알아서 더 힘들 수도 있고, 고만고만한 것 같다. 자기계발서 숱하게 만들어왔지만 내가 자기계발을 주변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 같지 않고, 투자서나 재테크책 저자들이 다 부자된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정말 모두 다 사람 사이의 일이다. 

부모 자식 사이,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 친구 사이, 동네 주민들과의 사이, 회사 사람들과의 사이, 업무적으로 애매하게 얽힌 사이 등등 너무 많아서 이제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메일이든 카톡이든 사람들은 매일 어느 정도의 글을 쓰고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 글에서는 묘하게도 '이 사람이 기분이 안 좋은가' '어? 예의가 좀 없네?' '왜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요즘은 단톡방도 너무 많다. 글을 쓰며 자주 눈치를 보게 된다. 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좀 더 멋있게 쓰고 싶은 생각이 있고, 좀 더 기발하게 웃기고 싶은 생각도 있다. 걱정하고 있는 마음도 전달하고 싶고 좋은 일에는 벅차게 응원도 해주고 싶은데, 단어가 딸림을 느낀다. 톡방 갯수가 늘어가면서 피로도가 높아졌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톡방에 형식적인 인사말 남기는 것도 의무적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매사를 기분 좋을 때만 처리할 수는 없지만, 사람 사이의 일은 정말 기분이 좋을 때를 기다려, 또는 기분이 풀린 후에, 목소리 들으며 처리해야 한다. 힘들고 안 좋은 일을 전달할 때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톡을 보내놓고 그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나는 오늘 오전에 A와 통화하며 또 한번 깨달았다. 톡을 읽은 후 답을 톡으로 했으면 나의 섭섭한 감정이 실렸을 것이다. 아니, 내가 '나, 섭섭한데, 너 그거 알아야 해' 를 드러내려고 한두 단어 집어넣었을 것이고, 그걸 단박에 눈치챈 A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전화하길 잘했다. 그도 나도 기분이 안 나빴고, 일은 잘 풀렸다. 


오후에는 편집자 후배 B가 너무 힘들다며 전화를 해왔다. 성과를 내고 싶은데, 하는 일이 다 딜레이되고 자신은 지키지 못할 목표만 세운 꼴이 되었다며 괴로워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윗사람에게 미안해서 힘들고, 바깥으로는 저자 역자 디자이너 에이전시 등 담당자들과의 관계에서 힘에 부쳤다. 

'지금처럼 이렇게 일을 못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까지의 경력과 나이와 책임감을 생각했을 때 자신에 대해 너무 처절하게 실망하고 있었다. 벌여놓은 일이 많은데 하나도 수습이 되지 않고 있었고, 성과 욕심에 새로운 계약을 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다. 

한동안 성과! 성과!를 외치던 시대가 지난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직 내외에서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판매량과 수익, 출간 종수 등 눈에 보이는 숫자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일을 더 벌이지 말고, 하나씩 정리하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는 마음 이면에 그래도 뭔가 성과를 내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겹쳐 B는, 지금 뭘 해야 할지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윗선에 보고를 어찌 해야 할지, 저자와 표지 본문 피드백을 어찌 해야 할지, 또다른 저자는 책 내고 싶다고 목차를 보내오고... 자신감이 한껏 하락해 있는 B는 업무의 우선순위도 뒤엉켜 더 악화될 수 없는 최악의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정말 하나만 하라고 했다. 그것만 하고 그만두겠단 생각으로 그냥 하나만 하고 나오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예전의 내 모습이었고, 못하는 거 못하겠다고, 이러다 죽겠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나오라 했다. 나는 나만 생각하고 잘 그만두는 애였지만 B 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니 다 무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더 이상 자신을 갉아먹지 않고 잘 헤쳐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일만 하면 되었던 때를 생각하며 '그때가 편하고 좋았다' 싶다. 지금에 와서 '학생 때는 공부만 하면 됐는데... 그때가 좋았지' 하는 거랑 똑같다. 학생 때 우리가 걱정 없이 공부만 했냐 하면 절대 아니다. 지금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숱한 고민들에 억눌려 있었고, 앞으로 뭘할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 했고, 부모의 잔소리에 귀찮아했다. 어렸던 우리는 힘겹게 그 터널을 지나왔지만 그 시간이 흘러 기억이 미화되고 포장되었을 뿐. 

병아리 편집자 시절, 주어진 일만 하면 되었냐 하면 아니었다. 빨리 연륜을 쌓고 싶었고 지식과 지혜를 갖고 싶어 선배들을 부러워했던 시기를 우리는 다 잊었다. 지금, 그 선배가 되었는데, 힘든 것이다.

연락을 해온 B는 지금 사방에서 몰아닥친 풍랑을 잘 헤쳐나와야 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조직의 문제와 출판계의 상황, 수익창출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고민 등 해야 할일이 산더미다.

이 많은 일들이 '하루'에 꽤 많이 정리되고 진도가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뿌듯한 날은 컨디션이 좋은 날이다.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다. 전날 술 안 마시고 기분 좋게 잠들어, 새벽에 좋은 기분으로 상쾌하게 일어나, 잡다한 인터넷 기사들 쓸데없는 정보들에 눈길 주지 않고 곧바로 중요한 업무에 돌입, 그 다음에 급한 업무를 진행한다. 어떤 날은 하기 싫은 일부터 진행을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급한 일, 중요한 일, 하기 싫은 일, 하나마나 상관없는 일...들이 쌓여 있다. 좋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기꺼이 잘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몸이 건강해야 하니 운동하고 적게 먹고 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일들을 제때제때 잘 챙겨줘야 한다. 그래야 회사일을 하라고 '마음'이 기쁘게 허락해준다. 

그렇게 확보하고 챙긴 시간에 기쁜 마음으로 일을 처리한다.

매번 느끼지만 모든 일은, 모든 사람 사이의 일은, 기분이 다다.


오늘도 나는 기분 좋은 순간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내 컨디션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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