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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에 결혼,
테니스치다 만났습니다

마흔은 결혼하기 좋은 나이?


결혼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마흔, 6월에 테니스 대회 뒷풀이 자리에서 처음 얼굴을 보고, 7월에 본격적으로 만나 12월에 결혼식을 했다. 연애라고 할 만한 시기는 석 달 정도였을까? 자연스레 이 사람과 결혼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자연스레 그의 어머님과 만나 저녁을 먹었고, 자연스레 우리집에 인사시키러 데려갔다. 만나서 두 달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40을 넘기지 않겠다는 무언의 속도감이 치러낸 일이다. 여자 나이 마흔, 남자 나이 마흔셋, 주변에선 은근히 아니 대놓고 한 번 갔다온 사람도 괜찮다고들 했다. 그 나이에 안 갔다 온 게 더 이상하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각종 드라마 스토리가 부모님을 자연스레 설득시켜 놓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신랑이) 초혼이냐 물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티는 안 내셨지만 매우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딱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이 없으면 결혼을 안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개팅이나 선이 참 싫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어필해야 하는 자리가 어색하고, ‘나 사귀는 사람 없어요’ 하고 나가서 앉아 있는 것도 무척이나 없어 보였다. 차기도 하고 채여도 보면서 나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게 보이고 싶었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지만 삼십대의 후반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다 결혼을 하고 없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신체 조건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주변에선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다. 살다보면 다 똑같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돈 있는 사람이랑 결혼해라, 착한 사람이랑 결혼해라, 아니다 결혼하지 마라, 여자에겐 결혼이 손해다 뭐하러 결혼하니, 혼자 살아라, 등등 무수히 많은 자기한탄스러운 조언들이 오갔지만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그 말들을 내가 직접 체험해보고 내 입으로 그 말 해야겠다 생각했다. 눈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기왕 살 꺼 기왕 다 똑같을 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다가 지겨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ㅠ 살아보니 정말 주변과 고만고만한 듯 비슷한 것 같지만 그래도 착하게 즐겁게 살고 있다. 내가 잔소리하면 군말 없이 들어주는 남편 (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고 있었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서 신혼 초에는 정말 이 남자를 내가 잘 이끌어 주어야겠구나 하는 사명감까지 불타게 했던 남편, 가끔 5만원씩 용돈을 주면 “너무 오랜만에 주시는 거 아니예요?” 하며 나를 웃기면서 다음에 또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남편,과 벌써 9년째 살고 있다. 많이 살았다!


결혼하고 한 번의 유산 후 몸과 마음이 굉장히 약해지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었다. 나는 41세였다. 다시 임신이 안 될지도 몰랐다! 나는 조심했었어야 했고 마음가짐도 더 발랐어야 했고... 나는 틈만 나면 자책하기 바빴다. 아이 태명은 '봉'이었다. 신랑은 방구쟁이라 중학교때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옥뽕'이었다. 뽕에서 ㅂ 을 하나 빼고 귀엽게 '봉'이라 지어주었는데, 너무 일찍 잃고 말았다. 출산예정일이 12월 25일이었었다.

두 번째 천사가 찾아와주었을 때 출산예정일이 5월 16일이었다. 봄에 태어나는 봉이라고 우리는 '춘봉'이라 불렀다. 신랑은 퇴근시간 현관을 들어서며 즐겁게, 내 이름 말고 춘봉이를 불렀다. 우리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당연히 딸일 거라 생각했다. 아들이라는 의사쌤의 말을 듣고 신랑은 3일 동안 춘봉이를 부르지 않았다. ㅠ

아이는 아빠 닮아 머리둘레가 굉장히 컸고, 역아자세로 웅크리고 있어서 제왕절개로 낳았다. 나는 아이낳다 죽으며 어쩌나, 너무 많은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 조금씩 느리지만 할 거 다하며 잘 자라주고 있다.

아이가 남편처럼 자라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뭄에 콩나듯 드는 생각이긴 한데, 어느 날, 아이 앞에서 (아빠 들으라고)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남편이 움찔 하는 게 보였다. 아내 말대로 훌륭한 사람으로 살 결심을 하는 듯 보여서, 가끔 아이에게 이 말 해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이 정도 인성과 유머감각이면 결혼해도 좋다 생각한다. 살면서 돈 때문에 감정 때문에 ‘고르고 고르다 이런 남자랑 결혼했구나!’ ‘내 발등 내가 찍었네’ 자조도 가끔 했지만 이만하면 아, 근근하긴 하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쑥쑥 자라는 만큼 내 나이가 훅훅 들어가고 있지만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과 행복을 함께 느끼는 순간들이 많기에, 이 정도면 나의 사십대 괜찮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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