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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용기

이쁘게 나이 먹을 예정


늙어가는 일만 
남았지만


얼굴의 윤곽과 손, 팔, 다리, 피부가 푸석해져 가는 데서 내가 꾸준히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얼굴은 광대뼈와 턱뼈가 늙었다. 이건 비단 내 얼굴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 얼굴에서도 많이 느껴진다. 보톡스나 필러로도 감출 수 없는 골격의 늙어감, 아무리 의학의 힘을 빌려도 20대 초반의 그 풋풋함과 젖살 가득한 귀여움은 도저히 흉내 내지지가 않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또 어떤가? 흰머리가 늘어가는 문제와 빠지는 문제, 여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무릎에 살짝 신호가 오는 것도 느낀다. 나는 매일 하나씩 두 개씩 청춘이 사그라져감을 몸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들이다. 40대의 내가 20대의 나와 비교를 하니, 마음은 늘 평행선을 달린다. 20대에는 당연했던 보편적인 기준들이, 미의 기준도 아니었던 머리카락이나 팽팽한 피부, 허리와 무릎의 무사함 이런 것들이, 하나씩 잃어가면서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평소에 공기의 소중함을 못 느낀 채 숨쉬는 것처럼.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냥 지금 40대의 송, 현, 옥, 이라고 말이다. 몇 달 안 있으면 50대가 되잖니....... 그나마 지금도 소중하다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그걸 알아가는 시간도 삶의 일부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을 50이 넘고 60이 넘으면 또 그리워하고 부러워할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자고 생각했는데, 아들러가 다가왔다. 필요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러 등장하는 소중한 책과 사람들. 감사하며 살 인생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일본 작가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통해 나는 뒤늦게 만났다. <미움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로 150만 부가 팔려나가는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뻔한 내용일 거다, 그 흔하디흔한 일본책이 또 잘 팔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그 작가의 후속작 <마흔에게>라는 책이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왔다. 내가 만들고 있던 책에 참고할 목적이었다. 목차에 좋은 문구가 많았다. 좋아서 쭉 써보다가, '늙어가는 용기' 라는 단락이 맘에 들었다. 이걸 제목으로 하지, 라고 생각했다. 판권지를 보니 원제는 'Oiru Yuuki.' 일본어를 모른다. 검색해봤다. 누군가도 나처럼 이게 원제인데 무슨 뜻인지 몰라 질문해둔 게 걸렸다. 풀이는 '나이드는 용기' 였다.

그래, 출판사에서도 제목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30~40대가 지갑을 여는 주요 독자층이니 마흔 키워드를 넣었을 것이다. 나이 드는 용기, 늙어가는 용기는 나처럼 딱!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제목이겠지만, 일반 대중들이 손을 내밀기에 적합하지 않은 제목일지도 모른다. 원제가 이러하니, 그리고 저자가 50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하기 위해 심장을 멈춰야 했던 경험 후 집필한 '나이 듦'에 관한 책이므로, 본문 내용은 전혀 40대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과 지혜를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연령층을 말한다면, 50~60대에게, 늙어가는 삶 간병하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자존감, 그 느낌의 중요성을 알고 자주 실천하는 것, 더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 나는 정말 마음에 꾹꾹 담아가며 읽었다. 유익했다. 그래도 제목에 대한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며 내가 나이 들고

내가 나이 들며 나의 부모가 늙어간다


아직은 아이가 어리다. 8살이다. 나는 곧 앞자리수가 바뀐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단상은 진즉부터 여기저기 끄적였었다. 아무리 끄적거려도 나이 드는 일은 익숙하지 않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도 어색한데, 부모가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익숙할 리 없다. 더구나 떨어져 사니까 자주 뵙지도 못한다. 
죽음에 대해 헤어짐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상조보험을 들며 조금 감했고, 나는 결혼을 하며 사위 없는 장례식장은 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우리집 장남이자 나의 첫째 동생이 집을 나간 지 15년이 넘었다. 자의로 행한 가출이라 실종신고도 안 된다 했고 알아낸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다. 더 방법을 알아보고 찾아내려 했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제 뜻이 그러하다면 연을 끊고 살고 싶다면 굳이 찾지 않겠다 생각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해봐, 이렇게 찾으면 되지 않냐"고 너무 쉽게 말을 내뱉을 때면 눈물이 났고,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슬프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막내동생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장녀노릇을 그리 썩 훌륭하게 하지도 못했기에 엄마 아버지 가시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으면 했다. 금기어까지는 아니지만 명절에 한번씩 만나도 되도록이면 장남 말을 하지 않았고, 그래도 해마다 장남 생일때면 엄마에게 전화해서 미역국 드셨냐고 챙기던 안부전화도 이제 내가 까먹은 지경에 이르렸다. 


어느 해부터인가 부쩍 주변의 부음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장례식장을 잘 다니지 않았다. 나의 부모와의 헤어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이때 정혜신 박사의 책을 만났다. 울산시립도서관이 개관을 해서 친정 내려간 김에 구경 갔다가, 그 많은 책들 속에, 그 많이 꽂혀 있는 책들 속에 <사람공부>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죽음과 세월호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그 자리에서 반정도를 읽어내려가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돌아와 몇 달 후 갑자기 생각나서 그 책을 샀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였다. 다른 책도 샀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나는 정혜신 박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보다도 그녀의 강연을 좋아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껴 읽고, 독서모임에서 소개했다. 나는 뭔가 모르게 나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을 마음 속으로 조금 준비한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되었다.
다가올 징후나 문제를 미리 알고 있으면 대처방법이 생기고 덜 아프다고 했다. 친구의 죽음을 옆에서 경험했거나 친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치료가 아닌 치유를 해오며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담담히 설명해주는 정혜신 박사의 글과 말에서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 후 마음 한구석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힘이 유가족에게 무슨 힘이 될까, 촛불 들고 나가는 한 사람의 손이 무슨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누군가가 잊지 않고 있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유가족들에겐 힘이 된다고 했다. 영수 엄마가 더이상 영수 얼굴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상황이어도 영수 엄마라고 불러주라 했다. 영수가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영수 동생 철수 이름을 붙여서 철수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영수 엄마에게 가장 슬픈 건 사람들에게서 영수가 아주 잊히는 것이니, 영수 엄마에게 영수 얘기를 해주는 순간이 그 엄마를 위로해주는 것이라 했다. 물론 성향과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내마음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얘기를 정성스레 풀어서 말해주는 정혜신 박사가 참 좋았다. 세월호 사건 후 대체 이 전 국민적인 우울증을 국가가 어떻게 치유해줄지 너무 막막하고 한탄스러웠던 나의 4년간의 답답함의 꼬인 매듭을 조금씩 풀어준 건 정혜신 박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하나씩 하기로 했다. 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니 표지를 펼치면 보이는 앞날개 하단에 노랑리본을 넣기로 했다. 생각은 했으나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2019년 더블엔 첫 책부터 앞날개 하단에 노랑리본을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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