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기부천사라니!

1부 EP21. 공포의 운전면허

by 에스

나를 우울함에 빠지게 했던 베스트 10 안에 드는 일화를 소개한다(물론 지금은 개그일화 베스트 3 안에 든다).

2015년 겨울, 나와 동생은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보통 고3 때 수능을 본 직후에들 많이 땄지만 우리는 그때 면허를 딸 여유가 없었다. 직장생활로 돈을 좀 벌어놓고 나자 이제야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나는 동생과 같이 학원에 다닐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느 운전면허 학원엘 같이 등록했다. 아침마다 셔틀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건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 차를 몰 거라 생각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학원을 다녔다. 이론수업을 듣고, 기출문제를 핸드폰으로 풀고 서로 질문도 하며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 나는 2종에, 동생은 1종에 도전하기로 했다.


필기시험날,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갔다. 필기시험에서 떨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보다는 잘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아마 동생도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치러졌는데, 기출문제를 몇 번 보고 갔더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결과는 90점을 훌쩍 넘겼고, 동생은 역시 우리 누나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이제 기능시험과 도로주행 시험만이 남은 상황. 기능시험은 간단한 주행과 주차 정도를 시험하는데, 너무나 가볍게 통과했다. 우리 둘 다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간 상태로 마지막 시험장으로 향했다.

도로주행 시험은 시험장 입구에서 우회전을 해서 넓은 삼차선 도로를 주행하고 돌아오는 코스이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낡은 시험용 승용차 운전석에 탔다. 시험관 아저씨께서 보조석에 타셔서 시험 규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이제 시작이다. 떨리는 순간. 동생이 탄 흰색 트럭이 앞장서서 먼저 출발했다. 나는 동생을 보내고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기회를 엿보았다. 멀리서 거대한 트럭이 오고 있었지만 우리 차선이 아니었고, 너무 멀었다. 나는 핸들을 틀어 우회전을 했다. 그런데 시험관이 소리를 빽 지르며 보조 브레이크로 차를 급하게 세웠다. 몸이 앞유리창에 닿을 것처럼 앞으로 확 쏠렸고, 동시에 눈앞으로 트럭이 쌩 하고 지나갔다. 시험관 아저씨는 미쳤냐면서 화를 버럭버럭 냈다. 알고 보니 트럭은 나와 같은 차선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빨리 달려오고 있었고.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실격당했다. 바로 차에서 내려 터덜터덜 대기실로 들어갔다. 한참 뒤, 시험을 마친 동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내가 뒤따라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실격 얘기를 해 주었다. 동생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했다. 그리고는 시험관 아저씨와 똑같이 미쳤냐면서 잔소리를 돌아오는 내내 해댔다. 동생은 1종 시험에 합격해서 곧바로 면허증을 취득했다.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사고가 날 뻔 한 상황도 너무 무서웠고,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그 어떤 시험에서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나에게 탈락이라는 통보는 정말이지 엄청난 것이었다. 충격에 빠진 나를 동생은 하루 종일 놀려댔다. 엄마도 어이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곧바로 다음 시험을 등록했다. 시험 당일. 나는 혼자서 시험장에 가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있는 대로 투덜거리는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같이 데리고 갔다. 시험을 접수하기 위해서는 무려 오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사장님은 이번에는 붙으라고 파이팅을 외쳐 주셨다. 다시 차를 탔는데, 전보다 훨씬 더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한 번 사고가 날 뻔 하자 운전대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우회전을 해서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무사히 도로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시험장이 도심지 외곽에 위치한 곳이어서 그런지 각종 화물트럭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빨간불이 켜져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 나는 깜빡이를 켜고 대기를 했다. 내 앞에는 거대한 트럭이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신호등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트럭이 출발했다. 나도 따라서 좌회전을 하는데, 갑자기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거기는 교차로 한가운데였다. 시험관 아저씨는 이번에도 길길이 화를 냈다. 여기서 멈추면 어떡하냐고! 이럴 때는 그냥 가야 한다고. 우리는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차했다. '후진을 할까요?'라는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시험관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실격.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동생은 이번에도 실격이라는 말에 빵 터졌다. 그리고는 또 놀림 시작.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지? 어떻게 또 실격이지? 집에 오자마자 방바닥에 쪼그리고 누운 나는 정말로 우울해졌다. 탈락을 한다는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충격이었다.

세 번째 시험. 나는 또 동생을 끌고 갔고, 울상인 상태로 또 오만 원을 지불했다. 이번에는 사장님이 내 눈치를 슬슬 보시며 잘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젠 진짜 합격해야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운전을 시작했다. 우회전도 잘했고, 바보처럼 교차로 중간에 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차선 변경에 실패. 또 탈락했다. '누나, 괜찮아?' 이젠 동생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정말 나는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건가?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만해야 하나? 그렇지만 여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나는 지도 앱을 켜서 주행 경로를 공부했다. 여기서 우회전, 여기서 차선 변경, 여기서 좌회전하고 여기서는 유턴. 그리고 주차.


무려 네 번째 시험날이 되었다. 또 오만 원 결제. 나는 기부천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 같은 사람 덕분에 운전면허장이 먹고사는 건가, 싶었다.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은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은 지옥 같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차선 변경을 하고, 좌회전 차선에서 대기를 하고 유턴을 했다. 그런데 제대로 핸들을 돌리지 못해서 가드레일에 차를 살짝 부딪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저 이번에도 탈락이에요?'라고 외쳤다. 시험관 아저씨는 일단 운전을 계속 하라며 화를 버럭버럭 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이번에도 탈락이냐는 말만 반복하며 엉엉 울면서 운전을 했다. 어찌어찌해서 다시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조심조심 주차를 했고, 시동을 껐다. 결과는 60점 커트라인에 60점으로 합격. 지금 생각해 보면 시험관 아저씨가 많이 봐주신 것 같다. 동생과 엄마는 정말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저, 진이 다 빠졌고, 운전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좌충우돌 운전면허시험. 그리고 긴 시간의 장롱 면허 끝에 지금은 내 차를 가지고 있다. 나는 차를 몰기 전에 따로 개인 운전 연수를 받았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수를 해주셨던 분은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자만하지 않아서 사고를 덜 낸다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그 말대로인지, 나는 지금 운전 3년 차이지만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다. 내가 운전을 잘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항상 안전운전만을 고집하고 있다.

동생과 친구들은 한 번씩 운전 얘기가 나오면 이 이야기를 사골이 되도록 우려먹으며 놀린다. 나는 버럭버럭 화를 내지만, 결국은 같이 웃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내 자존감을 그 무엇보다도 낮게 끌어내렸던 공포의 운전면허시험.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오늘도 안전운전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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