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

1부 EP22. 인간은 이중적이다

by 에스

매일 엄마에게 문안전화를 드린다.

점심은 드셨냐, 오늘은 뭘 드셨냐, 시장은 다녀오셨느냐, 산책은 했느냐, 동생은 뭘 하고 있느냐 등 일상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동생은 여전히 취준생이고 엄마는 가사원에 등록해서 일을 하신다. 가사원이란 식당과 사람을 매치시켜 주는 곳인데, 주로 하루짜리 단기 구인이 들어온다. 고깃집이나 횟집 등에서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주로 홀서빙을 맡아서 하시는데, 가끔 설거지도 시키는 곳이 있으면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오시면 어깨에 파스를 붙인다. 너무 힘들어서 일을 포기하는 날도 있다. 그 나이가 되시도록 일을 고집하시는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쓸 데가 없는 집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보고 싶다.

아니, 다음이란 게 있다면 무생물로 태어나고 싶다. 자기가 누군지, 자기가 불행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한낱 돌멩이가 되고 싶다. 그냥 한 자리에 무덤덤하게, 수십 년을, 수천 년을 아무 걱정 없이 존재하고 싶다.


꿈을 많이 꾼다. 어떤 날은 실제로 울 정도로 실감 난 꿈들을 꾼다. 그래도 가끔은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좋은 꿈을 꾸고 눈을 뜨면 반드시 눈을 다시 감는다. 꿈속에서 살고 싶어 진다.


떠나고 싶다. 어디든. 그만두고 싶다. 모두 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있고 싶다. 내 바람들은 모순적이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또한 세상에서 없어져버리고 싶다. 간절하다. 모든 바람들이.


새벽 3시에 갑자기 오른쪽 배가 너무 아파서 깼다. 얼마 전에 자궁내막증 때문에 소파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 자꾸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것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후로도 내 배는 자꾸 복통을 호소했다.

조금만 참고 아침이 되면 병원에 가야지, 했지만 배는 점점 더 아파왔다. 정말 뭔가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지도 앱으로 야간진료를 하는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다행히 차로 30분 거리에 응급진료를 하는 곳이 있어서 대충 증상을 말하고 잠옷바람으로 차에 탔다. 한참을 쌩쌩 달리는 도중에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은 정확한 초음파 기계를 다룰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다며, 조금 있다가 오전에 진료시간이 되면 오라는 것이다. 가로등도 몇 개 없는 캄캄한 밤길을 유턴해서 다시 돌아오는 길이 서럽고 슬펐다.

쭉 밤을 새워서 고통스러워한 후 오전에 연차 허락을 맡고 병원을 갔다. 산부인과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내과에서는 장 운동 이상이라고 한다. 너무 짜증이 났다.


벌써 이러니 어찌한다. 아픈 곳은 점점 더 늘어나고 고장이 날 게다. 우울증도 모자라 자궁까지 속을 썩이고, 비염, 만성 어깨 통증, 안구건조증, 과민성 대장, 발목 부상...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는 이런 몸으로 구차하게 몇 살까지 살려는지. 피곤하고 지친다. 죽고는 싶은데 아픈 건 싫다니. 참 인간이란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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