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B는 제주의 쇼핑몰 회사에 입사해서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많을 때는 월 천만 원 가까이도 버는 그였지만, 정기적인 수입이 없다는 사실에 미칠듯한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작은 월급이라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있다면 좋을 것 같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비슷한 심정이었다. 디자인은 일이 많이 들어오는 때가 있는가 하면, 이게 바로 비수기인가 싶을 정도로 한가할 때도 있었다.
B는 몇 달간 그 회사에서 주 5일 9시간씩 꼬박꼬박 일을 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자, 나에게 슬쩍 지원 요청을 해왔다. 쇼핑몰에 올릴 상품 이미지를 편집하고 관리할 인력이 필요한데,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사님이라는 분과 간단한 면접을 보았다. B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이사님은 나보다는 어려 보였다. 그는 내 전직과 B의 강력한 추천으로 당일날 바로 합격 통보를 해 주었다.
나는 B에게 정말 많이 고마웠다. 내 앞날에는 항상 B의 도움과 조언이 있다. 심지어 우리는 최와 함께 셋이서 제주 디자인 업체까지 차린 상황이었으니. 회사 명함이 나오고, B가 어디서 인지 일거리도 한두 개를 가져와서 상의를 하곤 했다. 제주에서 막 오픈하는 업체의 브랜딩을 저렴하게 해 준다면 입소문이 빠르게 날 것 같다. 그러려면 마케팅 업체에 영업도 뛰어야 할 텐데. 쉬운 게 없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5잡을 가지게 되었다. 월화수 아침에는 카페 오픈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바로 쇼핑몰 회사에 출근을 해서 디자인 업무를 한다. 중간중간 B와 함께 우리 디자인 회사에 대해 상의를 한다.
공방은 퇴근 시간 이후로 예약을 열어두고, 예약이 들어오면 또다시 공방으로 출근해서 수업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개인 업무가 들어온 것을 부랴부랴 해결하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이건 말도 안되는 강행군이었다. 이제는 샤워기 하나도 내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손목 통증이 아파질 때쯤, 정형외과에서 오른손 건초염 판정을 받았다. 카페에서 탬퍼로 원두가루를 누르고, 다 내린 포터필터를 털어내는 행동을 할 때마다 손목이 지끈거렸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이 욱씬거렸다. 나는 회사를 일주일 정도 다니고 나서 카페를 그만두기로 했다.
카페 매니저는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 3일 정도 더 일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 3일간 오시는 단골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나에게 가끔 바나나나 오예스같은 간식을 건네던 노부부. 요즘은 사모님이 편찮으신지 오지 않으시길래, 물어봤더니 정말 편찮으시단다. 내가 그만둔다고, 그동안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드리자, 다음날 사모님을 모시고 오셨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에 입사하게 된 얘기, 사실은 공방 운영을 하고 있다는 얘기 등을 했는데, 마침 공방 바로 근처에 살고 계시길래 명함을 건네드렸다. 케익을 보내주시겠다고 하길래 극구 사양했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고 '안녕하세요오오!!!'하고 큰 소리로 인사하시는 쾌활한 어르신. 연한 아메리카노를 받아가실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 공손하게 인사하시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만둔다고 했더니 학생 이제 못 보는 거냐며 아쉬워하셨다.
따뜻한 카페라떼만 드시는 파란 등산복 아주머니. 하트 한 개를 못 만들던 시절, 아예 라떼아트를 배우는 중이라 미숙하다며 터놓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며 자기 커피 가지고 연습하라던 그 따뜻함. 덕분에 나는 매일 그 손님의 카페라떼로 하트 그리기를 연습할 수 있었다. 망하는 날도, 예쁘게 된 날도 변함없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해 주신 덕분에, 이제는 나름 성공적으로 하트 한 개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3일 동안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셔서 아쉬웠다.
그렇게 카페 알바를 그만두고 이제 4잡러. 공방은 참 미비하지만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고등학교에서 출강 요청을 해 왔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다니! 너무 설레고 너무 무서웠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좀 무서운가. 나는 잠을 설치고 다음날 제주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따뜻하신 담당 선생님과 여섯 명의 아이들. 내 생각은 너무나 편견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천사같이 착했다. 내 설명을 경청하고, 주어진 오일파스텔 그림을 누구보다 집중해서 그렸다. 부족한 것은 오히려 내쪽이었다. 완성한 그림을 담을 액자 사이즈를 잘못 구매해서 기껏 정성껏 그린 그림을 잘라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며, 오히려 이게 더 예쁘다며 아이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수업이 있는데, 이번에는 실수 없이 잘 해내야지.
정신과에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고 있다. 최근 피해망상 이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과대망상이 심해졌다. 예를 들면, 디자인 고객이나 공방 손님이 있게 되면 기쁜 마음보다는 리뷰 테러를 남길지 모른다는 엄청난 불안과 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다. 누군가와 아주 작은 갈등이라도 있게 되면, 안 좋은 결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나서 결국 나 자신이 파멸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약 추가를 해 주셨다. 한 달 정도 달라진 약을 먹고 나니 상태가 호전되었다. 물론 지금도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살아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생각할 것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은 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의 깊이는 얕아지는 것 같다. 매일 매일 출근하기 위해 차를 탈 때마다 숨쉬듯이 죽음을 생각하지만, 바로 옆 조수석이 아니라 멀리 다른 차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다. 현재 나의 목표는 강과 함께 돈을 벌어서 집 두 채를 더 사는 것이다. 말도 안 되게 큰 꿈이니만큼 그만큼 이루기 위해 더 오래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무언가 새로운 소식들이 나를 찾아오겠지. 부디 좋은 소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