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EP13. 턱밑까지 차오르는 날들
꿈을 꿨다.
꿈이야 매일 밤 하루에도 두세 개씩 꾸기 때문에 잠에서 깨면 까먹기 일쑤였지만, 이 꿈은 달랐다. 생생했다. 여느 때처럼 쫓거나 쫓기지 않고 그저 행복했다.
눈을 뜨는 순간, 행복과 허탈함과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꿈이었구나, 꿈이어서 그렇게 행복했었구나. 꿈이구나.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꿈은 마약보다도 더 치명적이었다. 말도 안 되게 행복하고, 끝도 없이 추락하게 만든다.
죽고 싶었다.
꿈속의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기에, 내가 죽는 날까지 영영 그럴 일은 없을 것이기에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아니, 다음 생에는 현실로 이뤄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생이란 건 없을 것이고, 나는 죽지 않았기에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아침 10시에 회사 출근을 한다. 30분이나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라서 기름값은 회사 다니기 전보다 배로 더 드는 듯하다. 끔찍하게 지루한 운전이 끝나고 나면 빌딩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출근 카드를 찍고 들어간다. 내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거북목 방지용 교정기를 어깨에 두른다.
회사 업무는 어렵지 않다. 쇼핑몰에 올라갈 상품 이미지를 편집하여 업로드하는 일인데, 힘들다기 보단 지루함에 더 가까운 듯하다. 회사에 나오면 평소보다 훨씬 피곤하고 예민해진 B를 만날 수 있다. 그는 내 맞은편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틈이 날 때마다 이사님과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그저 계속 일을 한다.
오후 2시. 퇴근을 하고 집이나 공방에서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는다. 보통 밥버거나 편의점 샌드위치 등으로 때운다. 밥을 먹고 나면 개인 디자인 업무를 한다. 저녁에 그림 모임이 있으면 모임을 나가서 또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강과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한 잔 하고 눕는다.
꿈을 꾸고 난 이후, 불면증이 심해졌다. 식욕도 떨어져서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증상이 약 부작용이 아님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때문에 매일 술을 마신다. 만취할 정도는 아니지만 맥주 500ml 한 캔은 무조건 마셔야 했다. 거의 습관이 다 되었다.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어떤 주술적 행동 같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방구석에서 혼술을 하고, 어떤 날은 강과 나가서 맛있는 안주와 술을 곁들이고, 또 가끔은 친구들과 거하게 마시기도 하는데, 이젠 그런 친목활동이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든다.
돈은 벌고 싶은데 죽고 싶다. 이 두 가지 생각은 나를 미치게 만든다.
결국 내 꿈속의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고,
때문에 나는 돈을 벌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루고 나서도 행복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
불행하고, 슬프다.
죽음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