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든다는 것

4부 EP14. 아픈 손가락에 대하여

by 에스


요즘은 크게 악몽을 꾸지 않는다 싶었더니,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악몽을 연달아 이틀간 꾸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 꿈의 장소는 어릴 때 살던 허름한 방 두 칸짜리 집 안이었다. 아빠가 꿈에 등장했는데, 아주 어린 나이의 내 동생을 학대했다. 실제로 나는 아빠가 동생을 학대하는걸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아빠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동생이 보는 앞에서 누워 자는 아빠를 가늘고 긴 횟감용 칼로 배를 찔러 죽였다.

에서 깨고 나니 내 무의식에 이런 무서운 게 있었나 싶어서 소름이 끼쳤다.


동생은 다음 날에도 꿈에 등장했다. 나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어딘가의 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중, 우리 앞을 트럭이 막아섰다. 커다랗게 시야를 가려버린 트럭이 짜증 났는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동생은 중앙선을 넘어 트럭을 추월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에 충돌했고, 동생은 죽었다.

나는 장례식장인지 모를 장소에서 목놓아 울었다. 동생이 이 세상에 없다는 그 상실감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고, 꿈애서 깨어나니 나는 울고 있었다.


그날 하루를 보내고 밤 11시에 문득 꿈이 다시 생각났다. 동생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았다. 매일매일 스토리를 꼭 한 두 개씩은 올리는 sns 중독자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너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일이 출근이니 자고 있을 것 같아 미처 전화는 하지 못했다. 걱정에 가득 찬 밤. 잘 있냐는 카톡만 보내놓았다.

다음 날 동생에게선 잘 있다고, 무슨 일이냐며 전화가 왔고 나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생은 빵 터져서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근황 토크를 한 시간 가까이했다. 동생과 이렇게 오래 통화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몸이 멀어지고 나이가 먹으니 오히려 사이는 돈독해지는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지 않고, 내가 직장에 다니던 시절까지 우리는 꽤나 독립적이어서 서로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명절 같은 날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재미있게 보드게임을 하고 잠깐의 이야기를 나눌 뿐, 이렇게 오래 서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동생은 현재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진로상담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휴학을 거친 긴 방황과 고민의 시간을 끝낸 동생. 하고 싶은 게 없었던 동생은 드디어 직업상담사로 일하고 싶고, 청소년을 상담하고 교육하는 게 꿈이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 대학교에서 일을 하며 대학원도 다니다 보니, 비슷한 업종에 종사했었던 누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새삼 누나가 대단해 보인다며 꽤나 철든 것 같이 말하는 동생.

철없는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어린 시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황을 이제야 하고 있으니. 가출 한 번, 싸움 한 번 하지 않다가 이제야 다 늙은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으니. 동생이나 나나 다를 건 없는 것이다. 역시 과연 남매인가.


제주에 온 이후로 부쩍 동생이 보고 싶다.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다. 보통 '동생'하면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되고 그걸로 끝이었는데, 요즘은 엄마와 같이 셋이서 보드게임 하며 밤새 놀던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제주도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죽어도 안 온댄다. 냉정한 놈. 설에 다 같이 만나기를 기약하고 전화를 끊는 목소리가 못내 아쉬웠다.


가족이란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인연은 가족뿐이다. 강과도 그런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파트로 이사한 지 약 두 달째. 대개의 신혼부부들이 그렇듯 이것 저것 사소한 일들로 언쟁을 벌인다. 일반적이고 당연한 갈등이지만, 언쟁과 갈등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는 쥐약 같은 상황이다. 이 모든 스트레스들은 결국 사는 게 다 지겨워서 그냥 무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들게 만든다. 다들 이런 고민과 싸움 속에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밤에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동생 얘기를 하면서 잘 컸다고 우리 둘 다 한 시름 놓았다. 엄마는 오늘 간만에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늦은 저녁을 드신 참이었다. 일 안 해도 된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기회가 오면 꼭 한 푼이라도 벌겠다며 일을 하러 가신다. 언제쯤 한 푼 벌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실 날이 올까. 언제쯤 맥주 네 캔에 만이천 원이 아까워서 9900원하는 편의점 위스키 한 병을 반에 반 잔씩 나눠먹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참, 한 치 앞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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