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가성비가 좋다

4부 EP15. 광활하고 환상적인 술의 세계에서 나는,

by 에스


나는 술 마니아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술 중독자에 가깝다. 이게 곧 있으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요즘 술을 먹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사람들과 만나서 술을 마실 때는 주로 소맥으로 시작해서 소주로 바꾸거나, 사람들 분위기에 맞추는 편이다. 대부분 오빠, 언니들은 소주를 먹고, 어린 동생들은 부드러운 맥주를 선호한다.


소주는 알코올 맛이 덜 나는 한라산이 최애 소주였는데, 새로가 나온 이후 완벽하게 빠져버렸다. 알코올맛이 전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맥주는 카스보다는 테라. 조금 더 고소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테라를 광고하는 공유가 좋다. 역시 비싼 광고비를 써서라도 연예인을 섭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별하게, 양꼬치를 먹는 날에는 무조건 연태 고량주를 먹는다. 그 향기로운 냄새를 먼저 맡고,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민속주점이 당겨서 파전을 먹는 날에는 막걸리! 제주에는 제주막걸리가 대세지만,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공주 알밤막걸리이다. 술맛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이자카야에 가는 날이고, 마침 주머니 사정이 좋다 싶으면 사케를 시킨다. 사케는 너무나 좋아하는 술인데, 비싸서 자주 먹지는 못한다. 알코올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은은한 향과 고소함은 사시미와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 특히 최근에 알게 된 츠루우메 유즈는 유자 사케인데, 먹어본 사케 중에 단연코 최고였다. 가능하다면 집 안 가득 츠루우메 유즈를 쌓아 놓고 싶을 정도이다.


이렇듯 나는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이란 술은 거의 대부분 좋아하는데, 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양주이다.

처음엔 ‘양주‘하면 비싸고 부자들만 먹는 술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술을 고를 때 양주를 고를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알코올 맛 대신 강력하게 풍기는 그 표현할 길이 없는 느끼함과 오크향이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혼술을 할 때 주로 편의점의 네 개 만원 짜리 세계 맥주를 혼술 주종으로 삼았었는데, 그마저도 배만 부르고 취하지를 않자 가성비가 떨어진다며 최근에는 한라산 17도 소주 반 병으로 바꾼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미 삼아 신청해 본 블로그 체험단이 당첨되면서 위스키바를 가게 되었다. 제주 번화가인 연동에 위치한 작은 혼술바인데, 크리스마스가 직전이어서 가게 전체를 반짝거리는 조명으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짙은 색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가장 먼저 문 앞에서 나를 반긴 것은 검정 피아노였다. 피아노 위에는 몇 병의 술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건반 위에는 가게 이름이 적힌 엽서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단정한 음악과 함께 가게 분위기는 점잖게 톤다운 되어 있었다.

사장님은 반듯한 정장을 입고 아주 예의 바르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십 년 넘게 바텐더 일을 하신 분인 것이 티가 났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고 술을 다루는 몸짓이 우아한 것이, 술을 따르는 그 모든 과정조차 술을 마시는 행위에 포함되는 듯했다. 그는 노련한 솜씨로 다른 손님에게 칵테일을 대접하고 우리에게 왔다. 위스키를 잘 안 먹어봤다고 하자 처음 접근하기 쉬운 술을 추천해 주신다며 ‘발베니‘를 먹어보라 하셨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 일단 알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아주 귀엽게 생긴 위스키 잔 세 개에 각각 생산연도가 다른 발베니 세 종류를 따라 주셨다. 위스키는 숙성된 시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가장 숙성이 덜 된 것부터 맛보라고 하셔서 12년 산을 먼저 마셔보았다.

역시나, 위스키는 향이 정말 좋은 대신 너무 쓰다. 그러나 그 쓴맛을 지나고 나자 약간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솔직히 그것 외에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위스키들에 비해서는 먹을 만했다. 14, 16년 산으로 갈수록 향이 진해지고 맛이 더 썼다.

강은 딱 중간 것이 좋다며 14년 산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셋 다 비슷했지만 굳이 고른다면 12년 산이 제일 라이트 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날 마신 위스키는 그다지 맛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위스키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꿔 놓았다. 편의점에 가면 무조건 패스하던 위스키 라인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이 너무나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네 캔에 만원 정도 하는 맥주는 길어봤자 4일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위스키의 경우 가격대비 가성비가 생각보다 좋다!

어느 날 편의점에 갔더니 유명하지 않은 어떤 위스키 한 병을 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맛을 보니 여느 위스키처럼 써서 반 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한 번 사놓으면 정말 오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 같이 위스키를 못 먹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가성비 갑인 것이다. 실제로 그 위스키는 구입한 지 삼 주가 넘도록 다 먹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숙성 또한 오래되지 않았는지 오크향이나 쓴 맛도 심하지 않아서 오히려 나 같은 초보는 더 먹기 편했다. 이름을 기억해 놨다가 다음에도 구입해야겠다.


결국 이래 저래 따져봤을 때, 요즘 나의 혼술 기준은 ‘가성비’이다. 맛보다는 빨리 취할 수 있는가를, 오래 먹을 수 있는가를 본다. 매 달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입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정한 상황이 나 자신을 가성비라는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가성비.


국어사전의 앞부분 어디쯤에 실려있는 이 단어 하나가 나를 맨 뒤에 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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