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EP16. 2024년, 터닝포인트 그 자체
정신 차려보니 12월이다. 이번 한 해는 다른 때보다도 빠르고 정신없이 지나간 기분이다. 그 1년간, 나라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1. 정신과 증상에 대해서
가장 큰 성과는 불면증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퇴사했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누구보다 회사에 빨리 가지 않아도 되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나자 머리를 땅에 대기만 하면 잠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악몽과 수많은 꿈들은 여전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고 너무나 피곤한 것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스케일이 정말로 큰 방탈출 게임을 하는 꿈을 꾸었는데, 머리를 너무 써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질어질하고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외에 자잘한 악몽들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 손목 건초염 때문에 한의원을 다녀왔다. 2008년의 발목 부상 때문에 한의원에 꾸준히 다니긴 했으나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터에 한방을 잘 믿지 않았었는데, 이번 선생님은 달랐다. 일단 침이 너무나 아프다. 어떤 한의원에 가도 침 잘 맞는다는 소리만 들었었는데, 여기는 헉,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다. 침을 맞은 당일날과 다음날까지도 환부가 뻐근하고 욱신거릴 정도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딱 다음날은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문제는 꾸준히 다녀야 하는데, 너무 효과가 좋다 보니 병원에 소홀해지고, 그렇게 또 한참을 일하다 보면 다시 아프고, 다시 그제야 병원을 방문하고… 의 반복이다.
아무튼 그 한의원에서 불면증도 상담해 주신다는 안내판을 오늘 보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침도 놔주고, 한약도 지어준다고 한다. 여기 의사 선생님은 믿을만하니, 다음에는 불면증(악몽) 관련 상담도 받아보아야겠다.
우울함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자살충동은 여전하지만, 그 깊이가 많이 옅어진 기분이다. 정말 죽고 싶은 날에도 강이 옆에 있기 때문에, 같이 맛있는 걸 먹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분이 스르륵 가라앉는 것 같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도 조금은 고쳐진 것 같다. 요즘은 목표가 생겼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강과 함께 건물을 사는 것이다(웃음)
2. 업무에 대해서
올해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해 보았다. 공방은 광고에 돈을 많이 쓰지 않은 만큼 조용한 편이었지만 조금씩 있는 손님들은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을 내게 전해 주셨다. 최근에는 갓 대학교를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 여자아이 두 분이 손님으로 왔었는데, 즐겁게 수업을 하고 리뷰를 너무나 정성스럽게 남겨주셔서 감동을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활동은 나만의 그림체로 제작한 메뉴판이 사장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지 활발하게 의뢰가 들어왔었다. 본인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담은 명함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셨고, 인쇄 작업이 늦어지는 것에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B를 통해서 일하게 된 쇼핑몰 회사는 업무가 단순하고 근무시간도 4시간으로 짧아서 부담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일손이 부족해서 같이 미술 전시를 했던 최까지 영입하여 같이 일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나보다 3살 정도 어린 분인데, 월급을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연실 사과하셔서 내가 더 미안해질 판이다. 매일 수다도 떨고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활발하게 업무를 이어나가고 있다.
손목 건초염 때문에 일하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그만두었지만, 다른 지점에서 종종 빈자리를 채워달라는 헬프 요청을 해와서 틈틈이 용돈 벌이도 했다. 팔이 아파서 자주 못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카페 아르바이트는 재미있다. 마감이 아니라 오픈조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두운 가게에 불을 켜는 순간도 설레고, 음료를 만들어서 손님에게 드릴 때 ‘맛있게 드세요‘라고 했을 때 손님이 인사를 해주시면 그게 뭐라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이때 더 빈자리가 많이 나는지 23, 24일 연속으로 오픈 헬퍼를 해달라고 요청해 와서 그 이틀은 바쁠 예정이다.
3. 연애에 대해서
강과 신혼집으로 이사를 한 후 정말 사소한 걸로 다투는(?) 거의 모든 신혼부부들이 겪는 갈등을 경험했다. 예를 들면 나는 강에게 ‘물티슈 쓰고 뚜껑 좀 제발 닫아놔!‘라고 외치고, 강은 나에게 ‘고양이들 물그릇 좀 잘 챙겨줘!’라고 외친다. 왜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는지에 대해 다투게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강은 열심히 일을 하고 나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해주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린다.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가끔은 갈등이 커지기도,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이 나를 떠나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예전보다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걱정보다 믿음이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오늘은 강과 절친 사이인 친구가 육지에서 내려왔다. 둘을 놀러 보내고, 나는 나대로 혼자 혼술바에 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온 데다가,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손님은 나밖에 없다. 나는 사장님께 위스키를 추천받고 도란도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모든 날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모든 날들이 불행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나날들. 그런 날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책 한 권을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단 아직은 책이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행복한 일들로 책 내용을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