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01 prologue. 가벼운 사람
(본 시리즈의 내용은 모두 픽션입니다)
01 prologue.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힘겨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더욱더 힘겨울 것만 같은 대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보다 좀 더 후의 일이다.
그를 만나고 나서도 여전히 대학생이란 옷은 나에게 잘 맞지 않아서 힘겨웠지만,
그의 존재는 자상하고 다정한 재봉사 같아서,
손을 한참 덮는 긴 옷을 입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 그 소매 끝을
두 번, 세 번 접어 올려주고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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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마 선택과목 수업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어찌하다 보니 같은 조가 되어 전통 미술에 대해 조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와 같은 조가 된 거의 유일한 경험이었다.
나중에는 어째서인지, 같은 조가 되고 싶어도 절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같은 조로 활동했던 게
이토록 서로에게 관심이 없던 1학년 첫 번째 조가 전부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이러니해서 웃음이 난다.
그때 그에 대한 기억은 띄엄띄엄해서 몇 개 없지만, 결코 좋은 인상은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우리는 뒷산에 있는 절에 가서 불교미술을 조사하기 위해 등산을 했었다.
나와 그 사람 말고도 같은 조인 사람이 네다섯 명 정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억은 확실하다) 무려 머리띠로 앞머리를 해바라기처럼 올리고는 딱 붙는 티셔츠에,
하의는 충격적인 부츠컷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는 산에 올라가는 내내 진실로 10초도 조용하지 않고 연실 떠들어댔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또 다른 오빠와는 벌써 친해졌는지 붙어서 떠들다가, 다시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예쁘고 날씬하고 활기차 보이는 언니와도 금세 친해져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애칭까지 만들어 부르며 장난을 쳤다.
붙임성이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이게 나의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사실 그때의 나에게 그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같은 조인 K에게 빠져서 그 아이 외의 다른 사람은(배경까지도) 흐림 처리가 되어 있었으니까.
뭔가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나머지는 아예 깜깜한 어둠처럼 보이지 않는 건 어려서부터 여전했다.
그래놓고는 아아주 오랜 후에서야, '그 때 그 사람이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더 친해졌다면 좋았을텐데' 하며 후회하는 것이다. 습성이란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불상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을 때도, 쉬면서 서로에 대해 얘기할 때도,
그 사람은 그저 말 많고 붙임성 좋고, 예쁜 언니의 가디건을 어깨에 두르고는 애칭을 부르는
그런 가벼운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