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를 보고
즐거운 금요일 출근길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운전을 하면서도,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pd수첩을 목요일이 아니라 주말에 봤어야 했나, 아니 그냥 안 봤어야 했나 후회를 했다.
2011년 3월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됐고, 2011년 9월에 나의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초임 발령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학생 인권과 더불어 흔들리기 시작한 교권 사이의 과도기를 마주했다. 12년의 시간이 흘렀고, 교실에 난입한 학부모에게 뺨 맞는 담임이나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교사의 이야기는 더 이상 신선하거나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었다.
화면 너머 뉴스와 기사로 그런 일을 접했을 때, 저 바다 너머 나와 같은 업에 종사하는 누군가가 거센 풍랑을 만났구나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웠다. 몇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인 동료 교사가 고소를 당해서 변호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느새 내 발목까지 차 오른 파도의 서늘함을 느끼며 아찔했다.
그저께 pd수첩을 봤다. 소송에 휘말리고, 정신과와 경찰서를 오가는 선생님. 손을 벌벌 떨다가 신경안정제를 먹은 후에야 운전을 하는 동료의 모습을 보면서 망연자실해졌다. 발령 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초임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후 생을 저버렸다는 것을 보았을 때는, 온몸에 물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이 직업을 택한 이후로 늘 초등교사를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속상하고 상처받은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떤 것은 추억으로 미화했고 또 다른 것은 내 성장의 거름으로 추앙했다. 아이들과 아웅다웅 지내는 삶이 좋았다. 아이들과 웃고, 울고, 얘네를 가르치면서 나도 같이 커가는 한 해 한 해가 참 소중했다. 요가를 하고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던 이유를 친구들에게는 명퇴 준비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짜 이유는 체력 관리였다. 나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오래 교단에 서고 싶었다. 정말 마지막 해까지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지내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싶었다.
나는 이 직업에 자긍심이 컸고, 스스로를 나름 괜찮은 교사라고 여겼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수업이든 업무든 항상 최선을 다해서 임했으니까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생각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발령받은 교사인 나는 지금까지 이 시스템에 잘 적응했고 현명하게 잘 해쳐왔으므로, 교권침해나 아동학대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나 구설수에는 휘말리지 않을 거라고 넘겨 짚었다.
2021년 여름, 부산의 모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교사는 사망하기 며칠 전,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故김은정 교사(가명)는 수업 시간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에게 준비물을 빌려주던 중 욕설을 한 학생을 복도로 내보냈고, 그 학생을 남겨 적기 싫다는 반성문을 쓰게 했다. 학부모는 쓰기 싫은 반성문을 억지로 적게 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학부모 민원으로 故김은정(가명) 교사는 학생과 강제 분리돼 반에서 떠나야 했다. - MBC pd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어떻게 감히 나는 괜찮을 거라고 자신했을까, 어째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거리 뒀을까.
반성문이나 명심보감 쓰기를 아이에게 시켰다.
방해 행동을 하는 아이의 이름표를 칠판에서 내렸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방과 후에 남겨서 이야기를 나눴다.
치고받고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사자후를 내지르며 싸움을 중단시켰다.
수업 중,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단호하고 엄하게 꾸짖었다.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복도로 나가거나, 학년 연구실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따로 지도를 했다.
이 모든 것이 잠재적 정서학대 아닌가. 내가 했던 지도 방법을 '강압적'이라고 느껴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진단서'가 덧붙여진다면 그보다 완벽한 학대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참교사가 아니라,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하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해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아동학대범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다만 민원을 안 받았을 뿐이다.
나는 다만 고소를 안 당했을 뿐이다.
나는 다만 학생 운, 학부모 운, 그냥 대진운이 정말 좋았을 뿐이었다.
내 진심을 이해하고, 내 방식을 인정해 주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났을 뿐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정말 다행히 천운으로.
유독 힘든 아이를 맡았던 시기에, 제 일처럼 도와주고 내 고민을 경청해 주던 자상한 선배 교사를 만났을 뿐이다. 정말 너무 든든하게도.
사고였지만 학급의 아이가 크게 다쳤던 일이 있었을 때, 담임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신 학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아직까지 아동학대범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꽤나 따라줬고 수많은 버팀목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pd수첩에 나왔던 경력 교사들의 사례 역시 무척 가슴 아팠지만, 유명을 달리한 초임 교사의 사연은 정말이지 너무나 쓰라렸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교대에 입학하고, 발령받은 지 이제 겨우 1년 반. 학교에서는 사건이 커지기 전에 학부모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선생님. 올곧고 바르게만 살아와서 자신이 법을 어긴 아동 학대 가해자가 되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라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어머니.
중요한 건 꺾이는 마음
정년까지 행복하게 담임 교사.
얼마나 더 많은 버팀목과 운이 따라줘야 이룰 수 있는 목표일까.
내가 건강 관리하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년 퇴임은 내 생각보다 거창한 꿈이다.
'저 아이의 문제 행동을 고치겠다, 수업 분위기를 지키겠다, 우리 학급을 잘 꾸려가겠다.'는 헛된 망상을 내려놓으면 가능한 일일수도 있겠다. 이 시대가 원하는 교사의 사명은 한없이 꺾이는 마음을 지녀야 하는 것이니까. '열정은 민원을 부르고, 정성은 고소를 부른다.',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다.' 동료와 자조섞인 농담을 나누며 열정과 정성을 한 풀 꺾어본다. 문제 행동에 대해 훈육이랍시고 지도했다가 잘못 걸리면 아동 학대, 그런데 그걸 또 못 본 척 아무것도 안 하면 방임이나 직무 유기가 된다.
이렇게 깎이고 꺾인 이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나는 한 아이의 성장에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우리 학급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천직이라 부르며 사랑할 수 있을까.
주말을 앞둔 금요일, 들뜬 아이들이 내 곁에 와서 쫑알쫑알 이야기를 건네는데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 소소한 행복을 김 선생님도 충분히 누렸어야 했는데. 교직 생활의 고비고비마다 버팀목이 되어줄 추억과 경험을 더 많이 쌓았어야 했는데. 초임 교사의 열정과 꿈이 허망하게 꺾여버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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