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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트폴리오 Feb 01. 2023

투박하고, 아득하고, 아름다운,  빈티지 카툰

베이커리 카페 청킴제과를 위한 빈티지 카툰 by Hyper Pension

18만 창작자 회원이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는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노트폴리오 픽으로 선정된 작업의 창작 과정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투박하고, 아득하고, 아름다운, 빈티지 카툰

베이커리 카페 청킴제과를 위한 빈티지 카툰 by Hyper Pension/전유니

혹시 어렸을 때 즐겨보던 만화 기억나시나요? 누군가는 노란 재생지 흑백 만화를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껌을 사면 함께 딸려있던 납작한 화면비율의 만화를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빳빳한 코팅종이의 학습만화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어떤 만화를 떠올리든, 그 시절의 분위기도 함께 아련하게 떠오르지 않나요? 오늘은 빈티지 카툰 컨셉으로 브랜딩, 일러스트,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는 전유니님의 작업을 소개해드립니다.


거대한 펜션,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 전유니입니다. 하이퍼펜션은 ‘지구는 생명체들이 묵고 있는 거대한 펜션’이라는 뜻으로, 제가 운영하고 있는 1인 스튜디오의 이름이에요. 하이퍼펜션은 유한하고 아름다운 지구의 투숙객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람과 해류와 태양에 의해 디자인된 지구의 인테리어에서도 영감을 얻어요. 그 어떤 생물도 이 행성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펜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억이 닿는 먼 옛날부터 자연을 경외하고 좋아해 왔어요. 언제가 처음인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어릴 적 학습만화를 읽다가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탄생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보며 무의식적인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읽고 완전히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아주 긴밀하게 배열되고, 상호 작용을 하는 덕택에 우리는 잠시 사유할 수 있는 생명체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이지요! 자연과 생명의 순환은 아름다워요. 즐거운 날에는 더한 환희를, 괴로운 날에는 위로를 줍니다. 저는 자연과 생명과 순환을 탐구하고, 그것을 저의 언어(이미지)로 번역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엄마와 아들이 함께하는 제과점

오늘 픽비하인드 인터뷰에서 소개드릴 작업의 주인공 ‘청킴제과’는 아들(사장님)이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어받아 구움과자나 케이크를 만드는 제과점입니다.

‘청킴’은 아들의 성인 ‘정’과 어머니의 성인 ‘김’을 붙이고, 로마자 표기법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해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하기 위해서 브랜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컷 만화형식의 작업을 기획했습니다.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선의 밀도, 블랙의 비중, 그리고 특히 질감입니다. 만화는 디지털이 일상이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던 매체예요. 코팅되지 않은 거친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 때 생기는 번짐, 인쇄 면의 상태에 따라 균질하지 못하게 표현되기도 하는 검은색의 크고 투박한 망점들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종이와 잉크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을 화면 위에 올리고 싶었어요.


투박해서 더 좋은 빈티지 카툰의 매력

인쇄술의 발달 초기에는 종이의 품질도, 인쇄의 품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거친 종이에 쾅 찍으면 잉크가 번지기도 하고, 인쇄 면의 불균질 때문에 질감이 두드러지기도 했습니다. 여러 색을 겹쳐 찍어서 컬러를 표현할 때는 핀이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요즘에는 질 좋은 종이에 정밀하게 인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점점 디지털화되는 세상은 촉감과 물성을 그리워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먼 과거의 투박한 인쇄물에 정이 갑니다. 빈티지 코믹스 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로스트테크놀로지를 복원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막다른 길인 걸 알면서도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좋습니다.


의지와 두려움을 담아, 욕심을 불태우기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번 작업을 통해 얻은 것은 의지, 열정, 약간의 두려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꿈을 구현하는 일이구나.’ 하는 사실이 확 와닿는 순간에는 짜릿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해요. 이번 작업이 딱 그랬습니다.

기술과 태도와 감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지, 충분히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지 스스로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더불어 더 나은 작업자가 되어야겠다는 의지와 욕심을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커리어면에서는 청킴제과 작업 이후로 빈티지 카툰 의뢰가 들어오는 빈도가 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새로운 도전, Y 아티스트가 되다

2022년에는 Y브랜드에서 모집한 Y아티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Y 아티스트 공모전 제출 작업은, <시곗바늘이 알파벳 Y를 그리는 순간, 모든 가능성과 상상력이 질주한다. 그 순간이 Y moment이다> 라는 줄거리를 먼저 구상한 뒤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만져 보니 시곗바늘이 Y를 그리는 순간이 10시 7분 37초쯤 되더라고요. 숫자 1 0 0 7, 그리고 타이틀 Y moment를 컨셉츄얼한 디스플레이 타입의 서체로 먼저 배치한 뒤 일러스트로 화면을 채워나갔습니다. 예선 통과 후에 최종 Y 아티스트 선정을 위한 대면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현장에 계셨던 Y 관계자분들이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봐주셨어요. 이후 Y 아티스트로서는 KT Y BOX 3.0 키 비주얼 작업, Y아티스트 굿즈 제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창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 처음 노트폴리오 픽에 선정되었던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믿을 수 없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고, 정말 제 작업물 위에 노트폴리오 픽 선정 배지가 붙어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제 작업물과 이야기에 대해 질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창작자로서도, 디자이너로서도 더욱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묵묵히 지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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