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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더 덕 Nov 10. 2020

이탈리아에서 별똥별을

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희곡 워크샵 막바지. 워크샵이 끝나면 이번 시즌 공식일정이 마무리 된다. 그동안 각자  여러 장면  하나를 골라 마지막  독회로 발표하기로 했다. 길이는 10 정도로 짧고 부담없이. 독회가 끝나면 마지막 파티. 절묘하게도  날은 몇십년만의 유성우가 예보된 날이다.


발표와 파티는 워크샵을 하던 호텔이 아닌 회사 본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회사의 이탈리아 본부는 움브리아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저택으로, 푸른 산과 올리브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예술가들을 위한 숙소와 야외 극장, 스튜디오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아침부터 발표회 준비에 파티 준비에 모두 정신이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독회 발표를 위해 하나 둘 스튜디오로 모였다. 아드리아나는 테이블 셋팅을 지시하느라 바빴다.  


독회 발표 후, 모두 둘러 앉아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크샵에 대한 소감이나 서로에 대한 덕담, 수다. 즐겁고 따듯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K가 내 손을 잡았다. K는 시카고에서 활동중인 흑인 여성 극작가로, 매 번 눈에 띄는 화려한 패션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K는 내 손을 꽉 잡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J, 너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


뜬금없는 K의 고백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며칠 전 과호흡이 왔었다. 분명 즐겁게 워크샵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과 이런저런 압박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증상이 시작되기 직전 자리를 옮겨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던 K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K는 별다른 말 없이 나에게 마실 것을 타주거나 내 노트 위에 사탕을 올려 두었다. 나는 K의 눈을 보고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너도 그렇다고. K는 특유의 제스처와 말투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깔깔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석양이 눈부시게 붉다. 다들 핸드폰을 꺼냈지만 카메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택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다른 지역의 예술가들, 아드리아나의 친구들, 옛동료들,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먹고 떠들었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 모두 오늘 예보된 유성우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아드리아나는 사람들의 기대를 알아채고 유성우가 시작되는 9시부터는 저택의 모든 불을 끄고 다 함께 유성우를 볼 것을 제안했다. 별똥별이라니. 어떤 소원을 빌까.


9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몇 사람은 저택 뒤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저택의 불이 모두 꺼지자 사람들은 작은 비명을 질렀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하늘만 바라봤다. 눈에 보이는 것 중 검은 색이 아닌 것은 오직 하늘에 수놓인 별 뿐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의 탄성이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는 놀라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러움과 답답함에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이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못 보는 나같은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 별이 떨어지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수많은 별 중 맘에 드는 별을 골라 소원을 빌었다.


“또 오게 해주세요.”


이 날 노을은 정말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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