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속 닫힌 한반도를 여는 지적해법
21세기 세계는 다시 ‘대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해양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화가 기술과 정치의 이유로 위축되며, 지금 세계는 다시 육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이 중요한 흐름에서 섬처럼 고립된 채 뒤처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유라시아 철도 구상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섬이다. 북한과의 단절은 단순한 군사·외교의 문제가 아닌, 경제·물류·문화의 폐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경유한 철도 연결은 이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복원,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의 연계, 그리고 유럽까지 연결되는 초장거리 육상 물류망은 한국을 다시 대륙과 연결된 나라로 바꾼다.
러시아는 단순히 유럽 국가가 아니다. 그들은 자국 영토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속해 있고, 에너지·자원을 기반으로 극동지역을 재성장 기지로 삼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하산,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등 극동 철도망을 통해 한국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한반도의 단절, 즉 북한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과의 교역, 철도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기반 조성을 시도하고 있다. 남한이 러시아와의 철도협력 프로젝트를 체계화할 경우, 한국은 물류뿐 아니라 에너지·기술·관광 교류의 육로 거점이 된다.
이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요소는 러시아의 역할이다. 러시아는 이미 북한과 전쟁 병력 지원, 철도·에너지 협력, 노동자 송출, 경제적 파트너십을 통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구축해왔다. 특히 하산-라진 프로젝트, 러-북 공동개발지구 등은 러시아가 북한 인프라에 실질적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임을 입증한다.
즉, 러시아는 북한이 독단적으로 철도를 무기화하거나 폐쇄할 경우 그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있는 ‘지정학적 보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철도망의 핵심은 ‘지속성’이다. 어떤 정치 상황에서도 한번 놓인 철로는 쉽게 폐쇄되거나 무기화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철도 인프라에 중·러·한국 3국이 공동 투자하고, 철도를 다자적 안전장치로 지분 구조를 다자간으로 설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컨대 공동 운영법인 설립, 국제물류공사 형태의 지분 참여, 보장 조항을 담은 다자간 조약 체결 등으로, 북한은 자기 임의로 철도를 폐쇄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북한에게도 유리하다. 철도를 통한 물류 수익 확보, 국제 투자 유치, 러시아·중국의 정치적 후견을 유지하면서도 남한과의 경제적 유입을 통한 복합적 균형외교를 가능하게 만든다.
유라시아 철도망이 완성된다면 한국은 아시아의 동단이 아닌, 유럽-아시아 대륙을 잇는 교차점이 된다. 부산항과 인천항은 수출입 물동량의 해상 물류 거점에서 철도 복합 물류의 허브로 진화하게 되고, 경의선·동해선이 복원되면 남북경제협력은 물론, 유럽과의 육상 교류가 현실화된다. 이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서, 항만, 물류, 냉장 수송, 컨테이너 터미널 등 새로운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창출, 민간 기업의 글로벌 진출 기반으로 이어진다.
유럽과 육로로 연결될 경우, 문화·관광산업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유럽과의 국제 철도 관광상품, 러시아·몽골·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체험형 관광 루트, 동북아-유럽 간 예술·교육 교류의 확대가 가능해진다. 한국이 단순히 한류 수출국이 아닌, 문화·관광의 연결국가가 되는 상상력도 가능하다.
현재 국제질서는 미국-중국-러시아 중심의 신냉전 구도로 전환 중이고, 한국은 미일 동맹에 편중되어 있으나, 유라시아 철도는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단일 동맹에 의존하지 않고, ‘복수의 대국과 다자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하여 한중일 3국 사이의 관문 국가로서 협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은 ‘해양국가 + 대륙국가’의 이중 포지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기회이고 한반도는 대륙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한국은 지정학의 피해자였다. 이제는 그 구조를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라시아 철도는 단순한 철로가 아니다. 그것은 지정학, 경제, 물류, 외교가 교차하는 지능형 연결망이다. 북한 철도에 대한 다자 지분 안전장치, 그리고 한국의 통합전략이 함께 작동할 때, 우리는 폐쇄된 섬에서 대륙의 시작점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제는 꿈이 아니라, 전략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