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되지 않은 인간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질서
우리는 정치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권력, 제도, 통치 기술을 말한다. 그러나 정치는 단지 외부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정치는 언제나 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나는 그 존재의 출발점으로서, 순수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의 기만, 언어의 조작, 감정의 통제 앞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내면을 유지하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깊은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정치란 결코 계산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똑똑한 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역사를 바꾸는 건 결심이다. 그리고 그 결심은 늘 어떤 내면의 순수함에서 비롯된다.
순수란 무지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복잡한 계산을 다 통과하고도 마지막에 “인간”을 선택하는 태도다. 이익보다 진실, 유리함보다 정의를 선택하는 그 고집스러운 감정의 뿌리를 나는 ‘순수’라 부른다.
모든 체제는 순수한 사람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어로 포장된 명분보다, 그 말이 향하고 있는 의도와 침묵을 본다.
그들은 대중의 열광 속에서도 그 안에 숨겨진 비겁함을 감지하고, 권력자의 설득 속에서도 그 말의 끝에 있는 욕망을 간파한다.
그러므로 순수한 사람은 체제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이며, 새로운 정치의 씨앗이 된다.
나는 순수함이 인간의 마지막 정당성이라고 믿는다. 법률과 제도가 아무리 치밀해도, 그 안에 자기 고백이 없는 정치는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다시,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손상되지 않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거짓을 견디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서로의 상처를 감지하는 일이다. 정치는 법률 이전의 감각이다.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누가 침묵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민감함이다.
그 민감함은, 손상되지 않은 마음에서만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정치란 가장 순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순수한 사람들만이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