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소비를 선택이나 욕망의 표현이라 여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소비는 종종 정신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왜 그걸 샀는지도 모르겠어.”
“사는 순간엔 속이 좀 시원했어.“
”스트레스받으면 꼭 무언가를 질러.”
이 말들은 모두 소비가 단순한 구매를 넘어, 감정의 배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소비는 행동이 아니라, 증상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을 본능의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았다.
사회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참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억압된 감정, 욕망, 충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른 형식’으로 돌아온다.
질투는 냉소로 바뀌고
분노는 두통으로 바뀌며
공허감은 쇼핑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소비는 억압된 정신의 일시적인 출구가 되기도 한다.
과소비는 단순한 지출 과잉이 아니다.
그건 삶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감각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불안은 뿌리 없이 떠다니며 대상이 불분명하다.
그런 감정이 쌓일수록,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감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감정의 뿌리는 언제나 같다.
삶에 대한 통제력 상실, 그리고 억압된 감정의 분출.
과소비는 불안의 언어다.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걸 사면 너는 완전해질 수 있어.”
“당신은 이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러나 이 메시지들은 실제로는 억압을 더 조장하는 메시지다.
우리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 충족을 외부(상품)에서만 찾게 만들며,
결국 더 많은 불안과 더 깊은 억압을 쌓아간다.
결핍을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결핍을 팔고 있는 셈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억압의 유통 시스템이다.
억압은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표현하지 못한 것, 인식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어디론가 스며들어 이상행동이 되고, 중독이 되고, 소비가 된다.
따라서 억압을 해소하려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직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참는가?
내 안에 눌려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상처를 덮기 위해 무언가를 사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없는 소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도 감정을 삼키고, 충동을 눌러가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이유도 없이 어떤 물건을 사고 싶어진다.
그 욕망의 진짜 정체는 사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감정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자신을 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