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 철학 사이의 어떤 간극

by 신성규

독일 철학을 읽으면,

언제나 형식의 무게를 느낀다.

개념은 정밀하고, 논리는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이며,

단어 하나하나가 절제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사유의 법전’을 쓰는 사람들 같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도처럼 그렸고,

헤겔은 역사와 정신을 거대한 변증법으로 설명했다.

하이데거조차도, 비록 시적인 문장을 쓰지만,

그 시는 치열한 ‘존재론의 구조물’ 안에 갇혀 있다.


그들의 철학은 하나의 체계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분석적, 규범적, 구조화된 세계.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들을 읽으면,

그들은 정확히 말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결하려는 사람들이다.


몽테뉴는 자기를 파악하려다 세상을 쓰고,

루소는 고백과 사회이론을 오가며

자유와 억압을 동시에 노래한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면,

그들은 더 이상 ‘진리’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라는 단어를 의심하고,

그 사이의 공백, 언어의 흔들림,

몸의 감각, 타자의 침묵을 사유한다.


사르트르는 문학과 철학과 정치와 연극을 넘나들고,

푸코는 권력과 성, 광기와 지식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들뢰즈는 철학을 소설처럼 쓰고,

바르트는 텍스트를 해체하면서도, “사랑의 단상”을 조용히 읊조린다.


그들은 사물과 사물 사이, 개념과 감정 사이,

철학과 예술 사이를 뛰어다닌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독일 철학자는 ‘질문을 질서 정연하게 다듬는 자’이고,

프랑스 철학자는 ‘의심을 끝까지 사랑하는 자’다.


독일은 정제된 개념을 향해 파고들고,

프랑스는 개념 너머의 여백과 균열을 들여다본다.


전자는 신중한 모범생이고,

후자는 예민한 몽상가이자 광기 어린 천재다.


이것은 단지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진리를 믿는 방식’의 차이다.


독일은 아직도 진리가 있다는 가정 위에서 움직인다.

프랑스는 진리를 믿는 척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그 바깥을 꿈꾼다.


그들의 문장은 다르다.

독일의 문장은 마침표를 향해 간다.

프랑스의 문장은 쉼표와 여운 속에 머무른다.


모범생이 준 지식이 삶을 설명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때때로,

몽상가의 문장이 내 감정을 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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