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쟤는 눈치가 없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눈치를 보는 방식이 다를 뿐일까.
경계선 지능인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오히려 세상의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누가 한숨을 쉬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누가 대답을 늦게 하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밤새 곱씹는다.
그들의 ‘눈치 없음’은 사실 과도한 눈치의 결과다.
너무 많은 신호를 받아들이느라, 어느 하나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시선을 의식하지만 그 시선의 맥락을 통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는 그들을 눈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반면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눈치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는다.
사회적 신호를 인식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할 거라 여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표정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형성되는 구조와 논리다.
그들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볼 필요를 못 느낀다.
세상의 언어가 자신을 제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두 부류는 닮았다.
둘 다 사회적 규칙의 외곽에 서 있다.
경계선 지능인은 언어의 감정성에 압도되고,
천재는 언어의 형식성에 질린다.
하나는 너무 느끼고, 다른 하나는 너무 본다.
둘 다 결국 ‘느낌의 균형’을 잃은 존재다.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한다.
사회가 말하는 ‘눈치’란 사실,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정신적 완충장치가 아닐까.
눈치를 못 본다는 건, 그 완충을 통과해 너무 직접적으로 세계를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처를 잘 받고, 또 상처를 잘 준다.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예민하거나.
천재와 경계선 지능인 ―
그 둘 사이에는 얇은 막 하나가 있다.
그 막을 건너면 예술이 되고, 건너지 못하면 고통이 된다.
결국 그들은 같은 세계의 다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눈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언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