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내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내 감수성은 더 일찍, 더 깊게 이해받았을까?
어릴 적 나는 사람들의 말보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에 더 집중했다.
노을빛보다 그 속의 온도에 마음이 머물렀고,
노래를 들으면 멜로디보다 화음의 진동이 내 뼛속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내 안의 세계는 말보다 앞서 있었고,
주변은 그걸 ‘유난’이라 불렀다.
그래서 한강 작가가 부럽다.
그녀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예술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 감각은 설명 없이도 전해졌고,
그녀는 스스로를 감출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감각의 이름을 찾고,
조심스레 꺼내어 쓰는 중이다.
어쩌면 내 가족은 예술을 몰랐기에,
나는 더 깊게 스스로를 찾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또 다른 ‘선물’일지도.
그래도, 가끔은
이름 없는 감각을 알아주는 집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