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아침, 아이는 창밖의 햇살보다 먼저 깨어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어린이날은 그냥 상업주의의 잔치일 뿐이야.” 그러나 그 말은 어른의 입장일 뿐이다. 아이에게는 이 하루가 세계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선물은 그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너는 소중하다’는 말의 포장지이며, 사랑의 환율이 일시적으로 가장 높아지는 날의 거래 수단이다.
그렇다.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거래가 거절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사랑은 선물로 증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언어보다 포장을 더 신뢰한다.
어른들은 바쁘고, 피곤하며, 경제적 부담을 토로한다. “선물이 뭐가 중요해,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러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 눈앞의 작은 토끼 인형에 감탄한다. 어른들은 “그건 금방 질릴 거야”라고 말하지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질리는 것조차도 추억이 된다는 사실이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사랑받았다는 기억이고, 그 기억은 작고 싸구려 같은 플라스틱 인형 안에 조용히 담겨 있을 수 있다. 아이는 그 인형을 껴안으며, 어른이 되어도 모를 어떤 감정을 배우기 시작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받을 수 있는 존재구나.”
법적으로 말하면 선물을 주지 않는 건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말하면 무관심은 정서적 학대의 문턱이다. 아이는 날마다 자라고, 세상은 점점 거칠어진다. 어른들의 냉소, 가난, 분노가 가장 먼저 아이들의 감정에 부딪힌다. 어른들의 냉소와 아이의 감정 사이가 이 지점이다.
선물을 주지 않는 행위는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문제가 생긴다. 바쁘다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친다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린이날은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어.”
그리고 그 말은, 말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된다.
이것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선물이라는 행위가 아이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너는 오늘 세상의 중심이야. 너는 잊히지 않았어. 너는 기념할 만한 존재야.”
세상은 아이를 너무 쉽게 ‘미래의 노동자’로 길들인다. 학교는 인내를 가르치고, 학원은 계산을 가르친다. 그러나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감정이다. 그 감정 없이 자란 아이는 나중에 아무리 훌륭한 직업을 가져도, 내면은 늘 결핍 상태일 것이다.
선물은 사랑의 언어다. 어린이날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은 범죄다. 법률이 아니라 정서의 법에 따라.
그리고 이 법은, 모든 인간의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사랑은 보통 작고 가볍고 유치한 포장을 하고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