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유롭게 보고, 듣고, 소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미 선택당한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말했듯,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더 이상 자율적 창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이다. 철저하게 기획되고, 포장되고, 분류된 상품이다.
영화, 방송, 음악, 잡지—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는 서로 다른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공장 안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갑이라는 영화와 을이라는 영화는 겉모습만 다를 뿐, 내부 구조는 완벽하게 복제된다. 사랑은 항상 성취되거나 좌절되고, 악은 단죄되며, 착한 이는 보상을 받는다. 뻔하디뻔한 이야기 구조. 소비자는 그 안에서 자기 역할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소득 수준과 취향에 따라 분류된 틀 안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다르다”는 말은 이 산업 속에서는 기만이다. 차이는 본질이 아니라 장악의 도구다. 문화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 사람을 길들이기 위해 존재한다. 대체 가능한 세부 사항들만이 끊임없이 교체되며,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마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착각에 빠진다.
가벼운 음악 한 소절만 들어도 끝이 예측되는 세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결말이 예상되는 세계. 그 안에서 인간은 점점 더 표준화된다. 한 곡의 멜로디처럼, 하나의 이야기 구조처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처럼 복제된다. 그리고 그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아예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다.
예외는 없다. 문화산업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이 싸우는 것은 미학이 아니다. 돈이다. 권력이다. 줄다리기처럼 보이는 것조차, 결국은 표준화된 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자리싸움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너무 잘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웃고, 울고, 감동받고, 공유하는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반복된 공장 제품이라는 사실을 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거기에 몸을 맡긴다.
이것이 문화산업의 가장 교묘한 힘이다. 사육되면서도, 그것이 길들이기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