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007이라는 숫자는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한 아이콘이 되었다. 그렇지만 본드라는 캐릭터, 사실 그가 본래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본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일단, 여자를 홀리는 놈팽이다. 사실 이게 본드의 핵심이었다. 총 잘 쏘고, 적을 제압하고, 수트는 찰떡같이 잘 어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멋진 일들을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능글맞은 매력이었다. 아무리 수트가 잘 어울려도, 아무리 차가운 미소를 지어도, 본드가 진짜 잘한 건 바로 그 여자 홀리기였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크레이그의 본드는 좀 달라졌다. 낭만적인 사랑을 중시하고, 한 여자를 위해 싸우는 감성적인 본드로 변화했다. 아니, 낭만적인 사랑? 본드에게 그게 어울리긴 하는 건가? 본드의 핵심은 놈팽이 기질과 능글맞은 유혹 아니었나? 갑자기 ‘낭만’과 ‘사랑’ 같은 것에 푹 빠지다니, 본드가 복잡하게 사랑을 고민하는 모습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번 본드는 좀 더 깊이 있는 감정을 다루었어”라는 평가를 들으면, “뭐야, 본드가 감성적인 새끼가 되어버렸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본드의 진짜 매력은 그 능글맞은 놈팽이로서의 역할에 있었는데, 그가 아무 여자에게나 추파를 던지고, 눈만 마주쳐도 여자가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믿거나 말거나”하는 느낌으로 여자를 차지하는 그 모습이 바로 본드의 매력이었잖나. 그게 바로 본드의 본질이었다. 픽업 아티스트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 자신감 넘치는 매력이야말로, 본드라는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였다.
그리고 지금, 그 본드가 사라졌다. 낭만적인 사랑을 찾는 본드는 더 이상 ’피쉬앤칩스 먹는 근본 없는 놈팽이‘로서의 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이제 감성적인, 깊이 있는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로 변해버렸다. “그의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외침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본드가 이토록 변할 필요가 있었던가? 아니, 본드의 진짜 근본은 그 근본 없는 놈팽이 기질에 있지 않나.
새로운 본드가 등장한다고 하면, 진심으로 바라는 건 전통적인 놈팽이 본드의 부활이다. 여전히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매번 새 여자를 만나는 그런, 완벽하게 자유로운 본드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가 “믿거나 말거나”하는 듯한 유머러스한 미소와 함께 여자를 홀릴 때마다, 모두가 감탄할 수 있는 본드가 되길.
결국 본드의 진정한 근본은 자기만의 규칙을 따르고, 그 누구의 규제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가 여자를 차지하는 방식, 그가 모든 상황에서 가장 냉철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모습이 007의 본질이었다. 새로운 본드는 이 놈팽이 본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진짜 본드가 아니다”라고 불평하며 또 다시 과거를 그리워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