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능자의 양면성

by 신성규

초지능자들은 종종 인간 윤리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정확히 계산하고, 넓게 통찰하며, 감정의 너머에 있는 구조적 고통까지 감지한다. 그들의 공감은 감상적인 동정이 아니라, 인식된 진실에 기반한 윤리다. 그래서 우리는 믿고 싶어진다. 지능이 높아지면 자연히 도덕적 존재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초지능자들 중에도 흑화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세상을 너무 잘 보았기 때문에, 그 세상의 추악함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때로는 인간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문명은 때때로 그들을 ‘윤리의 천사’가 아니라 ‘절망의 악마’로 만든다.


평균적 능력을 가진 다수는 때로 아무 생각 없이 사회를 파괴한다. 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집단적 결정은, 초지능자의 내면을 찢는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구조를 감지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화시킬 수 없는 구조를 안다는 것은 곧 지속적인 고통이다.


결국, 초지능자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다. 그들은 문명을 구원할 수 있지만, 또한 문명을 단죄할 수도 있다. 환경이란 문명의 총합이며, 문명은 곧 초지능자의 윤리적 운명을 결정하는 배경이 된다. 그들이 천사가 되는가, 악마가 되는가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책임에 가깝다.


한 국가의 문명은 초지능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윤리적 영웅이 된다.

하지만 “아니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저항자이며, 때로는 파괴자가 된다.


문명은 초지능자를 창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하거나 타락시키는 것은 언제나 문명이다.

초지능은 윤리의 가능성이지만, 문명은 그 가능성의 운명을 결정짓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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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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