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지 않아도 아는 것에 대하여

by 신성규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가?

그 사실이 이미 느껴지는 것이라면, 왜 그것을 말로, 숫자로, 절차로 포장해야 하는가?

어떤 것들은 그냥 그렇다.

감각이 그렇다.


나는 증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증명은 내게 항상 2차적인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뒷받침하는 절차 같았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증명은 타인을 위한 것이고, 감각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어떤 리듬, 어떤 색, 어떤 표정에서 나는 진실을 느낀다.

그건 너무도 생생해서, 설명조차 억울하다.

그 순간, 언어는 나를 오히려 배신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 했지만,

나는 말한다. ‘느끼므로 이미 안다’

그건 베르그송이 말한 직관, 말 이전의 앎이며,

비트겐슈타인이 침묵하라 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창작할 때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기분이 든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확신이다.

내 안의 감각은, 무대 위의 고독처럼, 진실을 향해 열려 있다.

그 감각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항상 알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천재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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