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회를 받지 못한 사람들

by 신성규

많은 사람들은 본인 취향을 만들 기회 자체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것보다 이겨내야 할 것들이 먼저였고, 감정보다 기능이 먼저였고, 선택보다 복종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각은 자아를 키워가는 중요한 토양인데, 그 토양이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로 살아온 사람들.

나는 그게 안타깝다.


사회는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너는 뭐가 좋아?”

대신 명령했다.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마라.”

공장에서 일하듯, 학교에서 공부하듯, 군대처럼 사회를 통과해온 그들에게 취향이란 사치였고, 감성은 비생산적 낭비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어떤 계절을 사랑하는지, 고요한 음악을 듣는 순간이 있는지, 질문하고 싶어진다.

근데 그 질문조차 낯설어하는 표정을 보면 더 슬퍼진다.

그건 단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다.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건 단순한 게 아니다.

그건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통로고, 동시에 자신을 존중한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사회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유용한 나만을 가치 있게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은 자주 숨죽여 있고, 웃음도 무채색이고, 대화도 건조하다.

그 속에 사실 수많은 감각들이 잠들어 있었을 텐데, 때를 놓친 채 덮여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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