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노력만능주의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하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들은 이제는 일종의 집단적 주문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이 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기혐오와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한 이들은, 그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기보다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라고.
외국의 교육이나 사회 구조는 재능과 흥미의 발견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꼭 모든 학생이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경쟁은 주로 재능 있는 소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머지는 자신만의 속도와 영역에서 자기 효능감과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강요한다. 한 가지 트랙에 모든 아이를 밀어 넣고, 거기서 떨어지면 “네가 덜 노력한 탓”이라고 한다.
이런 구조에서 재능 없는 사람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즐기면서’도 더 잘하는데, 재능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며’ 따라가려 해도 결국 따라잡지 못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탈락, 좌절, 그리고 자책. 하지만 이 사회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애초에 당신의 길이 아니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력이 언제나 능력보다 우선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정한 문제는, 한국 교육이 각자의 재능을 찾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재능은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천부적 소질’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에서 발견되고 꽃피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능성을 찾아줄 기회를 박탈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만을 들이댄다.
결국, 이 나라는 재능을 발굴하기보다, 재능을 지워버리는 사회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노력’이라는 폭력 아래에서 기계처럼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