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익사하는 대한민국

by 신성규

한국의 대기업들은 탑다운 구조에 익숙하다.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는 따른다. 이러한 구조는 명령의 효율성에는 적합하지만, 혁신의 발생 조건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천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재는 본질적으로 구조에 저항한다. 그들은 질문한다. 왜 이 방식을 따르는가? 왜 이 룰을 반복하는가? 본질을 파고들며,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설계하려 든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전통적 조직문화는 질문을 두려워한다. ‘왜’를 묻기보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따지며, 이미 짜여진 판 위에서 놀기를 강요한다.


따라서 기성의 시스템은 천재를 오히려 문제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품지 못한다. 이질적이고 낯설고, 조직의 균형을 깨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명확하다. 기존 부서와 다른 자유로운 구조, 즉 기업 내부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KPI나 실적 평가의 틀에 묶이지 않고, 미래를 사유하고 가능성을 제안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에는 이런 구조가 드물다. 연구소가 있어도 기술 개발에 국한되고, 정책적 사고, 철학적 통찰, 문화적 혁신에 대한 자유도는 전무하다. 이 또한 천재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천재는 실적보다 비전을 말한다. 수치보다 구조를 본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은 비전을 실적으로 환산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문화다. 기업이 천재를 채용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시스템 때문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이다. 상명하복의 위계 구조가 무너질까봐, 통제가 안 되는 아이디어가 조직을 불안하게 만들까봐. 이 두려움은 ‘관리자’의 철학 없음에서 온다. 관리자는 지배자가 아니다. 가능성을 발견하고, 해방시키는 조율자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리더는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다.


혁신은 결국 이질적인 존재를 품으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구글, 테슬라, 오픈AI 같은 조직은 그것을 실험했고, 성공해왔다. 그들은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사고를 뽑았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

“우리 조직에 생각하는 자리를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과연 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 질문 없이는, 한국은 앞으로도 복제된 안정 속에서 서서히 퇴화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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