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와 나, 그리고 시지프스

by 신성규

도스토예프스키의 수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주제가 끝없이 반복된다.

죄와 속죄, 신과 인간, 고통과 자각.

이 주제들은 다양한 인물의 옷을 입고,

다양한 언어의 숨결을 통해 나타나지만,

결국은 같은 본질을 말하고 있다.


나 역시 글을 쓰며 깨닫는다.

어제의 사유가 오늘 다시 돌아오고,

다른 사건에 덧입혀 같은 통증을 다시 꺼낸다.

그저 조금의 불평이 추가되거나,

혹은 조금의 아이러니가 강조될 뿐.


인간의 문제의식은 주제를 새로워지게 하지 못하고,

감정의 음영을 다르게 해서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말한

“지속되는 자의식과 그 자의식의 병”과 맞닿는다.

즉, 사유하는 인간은 반복하며 병들고,

병든 인간은 다시 사유하며 자기 모순에 빠진다.


그의 인물들은 절규하고, 합리화하고,

자신을 향한 혐오 속에서 다시 신을 찾는다.

이는 단순한 고통의 반복이 아니라,

고통의 양식을 바꾸며 존재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그에게 고통은 진리의 불꽃이며,

그 불꽃은 인간의 의식 속을 순환한다.

나 또한 글을 쓰며 느낀다.

내 안의 고통이, 내 안의 질문이

다른 문장으로 바리에이션되고 있음을.


가끔은 내가 시지프스 같다고 느낀다.

같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고,

그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며

절망이 아니라 자각을 반복하는 자.


카뮈가 말한 것처럼

시지프스는 그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다.

그는 알고 있다.

“인간의 고통은 의미 없음을 자각하면서도,

그 의미 없음에 저항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그 바위를 다시 밀어올린다.

그 고통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채,

다른 감정의 결로, 다른 문장의 무늬로,

내 삶을 다시 써나간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시지프스처럼,

우리는 단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구조를 탐사하며 고통의 문장을 다시 쓰는 중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사유하는 자의 사명이며

깊이 있는 자만이 겪는 유일한 순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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