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를 싫어한다.
그 흔들림, 그 무작위의 덜컹임,
지각된 시간의 흐름마저 고르지 않다.
버스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의 상징 같다.
그 안에 앉아 있는 나는
끊임없이 미세한 불안에 노출된다.
반대로 기차는 좋다.
기차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고, 예정된 길을 간다.
그 정돈된 구조,
철길을 따라 뻗어나가는 선형적인 예측 가능성은
내 안의 혼란을 달랜다.
어쩌면 나는 구조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다.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들면,
그것이 나의 작은 성역이 될 때까지 계속 먹는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까지.
옷도 그렇다.
무심코 구매한 옷이 집에 돌아와 보면
이미 똑같은 옷이 옷장에 걸려 있는 걸 본다.
색도, 형태도 거의 흡사하다.
그 순간 나는 조금 당황하지만,
곧 안심한다.
‘그래,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어.’
패턴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방식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다.
사람들은 별것 아니라고 넘기는 어떤 감각이
나에게는 하루 종일을 흔드는 진동이 된다.
목에 닿는 옷이 까슬까슬하다 느껴지면,
그 날의 집중력은 모두 그 감각에 빨려 들어간다.
그 불쾌감은 무시되지 않고
의식의 전면에 자리를 잡는다.
내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이질적인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한다.
나의 감각은 단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한때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감각, 이 반복, 이 불안.
그러나 지금은 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지탱하는 구조다.
어쩌면 나는 자폐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결함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내는 고유한 언어다.
버스를 피하고, 기차를 택하는 것.
음식을 반복하고, 옷을 반복하는 것.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나만의 세계를 유지하고,
무질서한 세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