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은 정치적 메시지를 설파해도 되는가?

by 신성규

나는 한때, 종교가 인간의 내면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기도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설교는 그 진실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현실은 그 반대였다.

성경이라는 경전을 바탕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목자,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이념을 뒷받침하는 교회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성스러움이 점차 이념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장면들.


나는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성스러움이 특정한 인간의 입장에 붙잡힌 순간에 대한 거부였다.


한편, 나는 반문한다.

종교인은 정말 정치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가?


종교는 윤리적 주체성을 갖는 존재이다.

사회 불의에 침묵하는 종교는 영적 기만일 수 있다.

마틴 루터 킹같은 인물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인권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 참여”와 “정치 선동”은 다르다.

전자는 윤리적 촉구다. (예: 약자 보호, 정의 실현)

후자는 이념적 개입이다. (예: 특정 정당 지지, 정치적 프레이밍)


정치적 메시지를 성경에 흘려넣는 순간, 텍스트는 본래의 자율성을 잃는다.

신의 언어는 본래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상징이며, 인간의 권력 욕망과 싸우는 윤리의 뿌리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날, 설교단에서 특정 정당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게 될 때, 성경은 해석이 아니라 조작의 도구가 된다.


신의 뜻은 본래 인간의 정치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현실 속 종교는 종종 정치의 하위 언어로 전락하고 만다.

그 순간 나는 느낀다. 내가 진정으로 불편했던 것은 정치가 아니라,

‘진리’가 ‘이념’에 포획된 장면이었다는 것을.


종교는 사회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언어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것이 종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며,

신을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의 마지막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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