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화를 살고 있다

by 신성규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이 물음은 단지 도덕적 비판도, 역사 교육의 실패에 대한 지적도 아니다.

이것은 마치 오래된 신화처럼 반복되는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꿰뚫지 못하는 인간 의식의 구조적인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패턴을 인식하고 반복을 학습한다.

그러나 이 본능이 오히려 실수조차도 반복하는 구조를 만든다.

우리는 아픔을 기억하지만, 그 고통이 현재가 아닐 때

그 기억은 경고가 아니라 배경음으로 희미해진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매번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적 질서를 반복하며,

사랑하고 또 상처받는 이유다.

우리는 잊는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간은 매일 다시 자란다.

파괴와 회복이 반복되는 운명.


이 신화는 인간에게 말한다.

“너는 신의 불을 원하지만, 그 대가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지식은 늘 반복을 낳고, 반복은 새로운 희생을 부른다.


신화 속 신탁은 미래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예언을 막으려 할수록 예언은 실현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피하려다

오히려 그 길을 걷는다.


이것은 인간의 역설이다.

우리는 미래를 안다고 착각하지만,

그 앎이 오히려 우리 행동의 틀을 정해버린다.


진보는 있다. 기술도 발전하고, 사회도 변화한다.

하지만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의식의 진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부의 도구만 바꾸고, 내면의 사고방식은

수천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믿지만,

여전히 신화의 구조 — 영웅, 희생, 반복 — 속에 살아간다.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신화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각자 주인공이고, 각자의 신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신탁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운명 안에 있다.


인간은 신을 찾지만,

스스로가 신화를 만들어 반복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비극성과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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