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렇게 자주 화를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나를 보는 눈빛이 서늘했는지,
왜 사소한 말 한마디에 그토록 언성이 높아졌는지.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그 화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는 서로를 향한 분노를
내게로 돌렸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고,
가장 무력한 존재인 나를
감정의 방패막이로 썼다.
나는 그들의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미워할 때,
나는 그 감정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다.
‘대답이 느리다’, ‘말투가 짜증난다’
이런 사소한 이유들은
이미 터질 준비가 된 감정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에 불과했다.
나는 감정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갈등과 억울함,
애증과 원망이
내 잘못처럼 포장되어 나에게 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의심으로 시작됐다.
곧이어 ‘내가 달라지면 해결될까?’라는 희망이 되었고,
끝내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존재론적 절망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 나는 사랑받기 위해
웃었고, 순종했고, 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들 감정의 쓰레기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말을, 나에게 쏟아냈다.
그들의 눈빛은 나를 보지 않고,
서로를 향한 복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한다.
그 화는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 무시는, 그 냉담함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나라는 가장 순한 인간에게 떠넘긴 것뿐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화를 내면화했다.
나는 그저 아이였을 뿐이었다.
어리지만, 빠르게 세상의 부조리를 감지했고,
눈치 빠르게 침묵했고,
똑똑하게 감정의 흐름을 분석했으며,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의 패턴을 해석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그들은 나에게 화를 냈을까?
왜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을까?
정말로 어릴 땐 불을 지르고 싶었다.
이 세상의 불합리를 전부 태워버리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이 구조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그 선택지를 내가 짊어져야 할 만큼, 나는 너무 일찍 철들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가끔 과거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고,
그 원망은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축이기도 하다.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수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나는 나를 이해하고, 지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