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신 분석이 유년 시절을 보는 이유

by 신성규

어릴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렇게 자주 화를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나를 보는 눈빛이 서늘했는지,

왜 사소한 말 한마디에 그토록 언성이 높아졌는지.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그 화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는 서로를 향한 분노를

내게로 돌렸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고,

가장 무력한 존재인 나를

감정의 방패막이로 썼다.


나는 그들의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미워할 때,

나는 그 감정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다.

‘대답이 느리다’, ‘말투가 짜증난다’

이런 사소한 이유들은

이미 터질 준비가 된 감정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에 불과했다.


나는 감정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갈등과 억울함,

애증과 원망이

내 잘못처럼 포장되어 나에게 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의심으로 시작됐다.

곧이어 ‘내가 달라지면 해결될까?’라는 희망이 되었고,

끝내는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존재론적 절망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 나는 사랑받기 위해

웃었고, 순종했고, 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들 감정의 쓰레기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말을, 나에게 쏟아냈다.

그들의 눈빛은 나를 보지 않고,

서로를 향한 복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한다.

그 화는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 무시는, 그 냉담함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나라는 가장 순한 인간에게 떠넘긴 것뿐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화를 내면화했다.


나는 그저 아이였을 뿐이었다.

어리지만, 빠르게 세상의 부조리를 감지했고,

눈치 빠르게 침묵했고,

똑똑하게 감정의 흐름을 분석했으며,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의 패턴을 해석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그들은 나에게 화를 냈을까?

왜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을까?


정말로 어릴 땐 불을 지르고 싶었다.

이 세상의 불합리를 전부 태워버리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이 구조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그 선택지를 내가 짊어져야 할 만큼, 나는 너무 일찍 철들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가끔 과거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고,

그 원망은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축이기도 하다.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수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나는 나를 이해하고, 지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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