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잿빛 유년시절

by 신성규

내가 무너진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다. 또래가 만화와 친구의 농담에 웃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웃는 법을 잊고 있었다.

정서적인 학대는 물리적 폭력보다 더 교묘했고, 더 오래 남았다. 그것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짐이었다. 그렇게 나는 배웠다.

말하지 말 것. 드러내지 말 것. 기대하지 말 것.


나는 점점 사람보다 체계를 신뢰하게 되었고, 감정보다 논리를 의지하게 되었다.

감정은 흔들리고, 무시되고, 때로는 도구로 쓰였다.

그에 비해 논리는, 일관성이 있었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어린 나이에 너무도 빨리 철이 들었다. 아이가 아닌, 감시자처럼 스스로를 관찰하고 통제했다.

그리고 멀리 바라보았다.

성인이라는 탈출구를.


그곳에는 자유가 있을 줄 알았다. 선택할 권리, 말할 수 있는 권위, 나를 위한 공간.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자유는커녕, 나는 더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그 책임은 정당하게 주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책임지지 않았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다.


나는 쌓아올린 기대 위에서 추락했고,

그 충격은 단지 실망이 아니라,

희망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었다.


미래는 더 이상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고,

성장은 더 이상 ‘좋아질 수 있는 증거’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무너졌고,

그 무너짐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채,

나는 계속 자라는 척을 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1화예술가의 얼굴 속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