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는 실존하는가

by 신성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정말 병인가?

진단표에 적힌 그 몇 줄의 문장이 한 사람의 전 존재를 덮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살아오며, 온갖 종류의 정신병적 증상에 나를 대입해보았다.

불안, 회피, 분열, 과잉 감정, 무감정, 강박.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 어딘가에 살고 있었다.

마치 정신질환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스펙트럼 위를 유영하듯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르시시즘만은 섣불리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해체하고 비판한다.

자기애인가, 자기혐오인가, 그 경계는 흐릿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특히 예술적 감각이 빛나던 여성들.

그들은 하나같이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이것은 건강한 자기애인가, 아니면 병리적인 자기중심성인가?

혹은, 이 시대의 자기표현이 곧 나르시시즘이 된 것은 아닐까?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기애적 행위다.

‘내가 느낀 이 감정은 세상에 말할 가치가 있다’는 전제 없이는

단 한 줄의 시도, 한 장의 그림도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술성은 나르시시즘의 정당화인가?

아니면, 나르시시즘은 예술성의 부산물인가?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병적 자기애라는 진단은 너무 쉽게 누군가를 가둔다.

그리고 때로, 나는 누군가의 거울로서 나의 균열을 발견한다.


모든 자기애는 병일까?

모든 자기 중심은 잘못된 걸까?

혹은, 나르시시즘이라는 말 자체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자의 편의적 이름표는 아닐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장편은 건축가, 단편은 연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