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들은 긴 숨을 쉰다.
그러나 나는 단숨에 내뱉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간다.
단편은 숨이 짧지만, 심장이 세차게 뛴다.
그 뜀박질을 따라가다 보면, 문장의 심연이 내 호흡과 일치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장편보다 단편을 잘 쓴다.
이것은 단지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길이에 비례하지 않는 감각, 문장을 끝맺는 타이밍,
그 순간의 온도와 리듬을 직감하는 능력.
그것이 나에게는 단편의 문장으로 더 잘 발현된다.
장편은 리듬을 요구한다.
초반의 기대, 중반의 무게, 후반의 해소.
마치 심장이 아닌 폐의 작용 같다.
그런데 많은 작가들이 장편에서 이 호흡을 잊는다.
이야기의 심장은 뛰고 있지만, 폐는 이미 과호흡 상태다.
문장이 과잉되고, 감정이 반복되며, 독자는 산소가 부족해진다.
나는 이런 장편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왜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불필요한 숨을 들이마시는 걸까?
왜 이토록 많은 문장들이 단 한 번의 뛰는 심장처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는 걸까?
단편은 명료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들이마시기 전에 이미 내뱉는다.
무언가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폭발시킨다’.
그 안에는 서사보다 감정이, 플롯보다 주제가 더 먼저 있다.
읽는 이의 심장을 때리고, 떠난다.
그래서 단편은 기억된다.
나는 그것을 쓴다.
숨을 쉬는 대신, 뛰는 문장.
머무는 대신, 박동하는 이야기.
그것이 나의 글쓰기 리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