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 적 있다.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뒤에서는 “이 사람과는 결혼은 못 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
겉으로는 웃으며 손을 잡고,
속으로는 현실과 조건을 따진다.
그 말을 당사자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다.
왜?
상처 줄까봐?
아니.
자신이 위선자라는 걸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들은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을 ‘사회적 이야기’로 바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고,
사랑을 판단하는 말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터진다.
이건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사적인 진심보다
타자 앞에서 정당화 가능한 ‘현실적 이유’를 말해야
사회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은 가면극이 되고,
진심은 오히려 외부에서만 소비된다.
사랑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가끔은 존중일 수 있다.
하지만 일관된 침묵,
그리고 타인 앞에서의 과장된 해명은
이미 감정이 죽었다는 증거다.
진심은 그 관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바깥에서 나도는 진심은
가십에 불과하다.
그는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연애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앞에선 가장 정직해야 한다.
나는 사랑 앞에서 거짓을 싫어한다.
그 사랑이 끝나더라도,
적어도 진심이었음을 증명하려면
내 감정의 무게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
친구에게 “사실은 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할 용기로
정작 그 사람에게 “너와의 미래를 망설이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면 진짜를 말하는 건,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가식과 분리를 만든다.
사랑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내가 그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을 진짜로 살아내야 한다.
사랑을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과만 나누는 사람은
결국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랑은 자기 감정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그 사람에겐 말하지 못하는 감정 —
자신의 사랑을 타자화하는 행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생존술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랑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