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장애에 대한 메타적 성찰

by 신성규

나는 자주 분석한다.

이 세계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내 성격 때문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정신의학의 카테고리를 들춰본다.

성격장애. 클러스터 A, B, C.

각 범주 안에서, 나는 나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회피성, 강박성, 자기애, 경계선, 편집성, 연극성…

진단명이 아니라, 마치 인간이 만들어낸 내면의 아키타입처럼 느껴진다.

그 어떤 파편도 내 안에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조각들을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다.

예민한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감정 과잉의 사람들.

그들 역시 어딘가의 항목에 들어맞았다.


그러자 혼란이 찾아왔다.

만약 모두가 이 병명 아래 들어간다면,

‘병’이란 과연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정상’과 ‘병리’를 가르는가?


나는 생각한다.

혹시 성격장애라는 진단은,

‘불편한 인간’을 분류하는 시스템은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적응적 인간 모델에 맞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을 ‘장애’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의문을 품는다.

나는 메타적으로 인지한다.

내 성격의 조각들, 나의 반응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그런데 병리로 진단받은 이들도, 그들의 내면을 인식하지 않을까?

그들도 고통받고, 질문하고, 변화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자기 성찰이 존재하는 ‘병’은 과연 병인가?

아니면, 그것은 단지 다르게 기능하는 하나의 구조일 뿐인가?


나는 이 물음에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격의 병리화를 통해 인간을 쉽게 분류하려는 시도는

너무 자주, 인간의 고통을 사유의 대상이 아닌

‘처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병명을 떠나, 나의 조각들과 공존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때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도,

그 안에 어떤 리듬이 있는지를 끝까지 들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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