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조울증의 여성들과 가까워졌는가

by 신성규

나는 사랑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다. 상대를 단순히 기호나 조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꿰뚫고자 한다. 나의 존재가 타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종종 상처를 마주한다.


지금까지 나와 깊은 관계를 맺은 여성들 중 다수가 조울증, 혹은 감정 기복이 큰 이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준 사람이야.”

“너를 만나고 진짜 사랑을 알게 됐어.”


그 말은 한편으로 내게 위안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내면을 진심으로 껴안았다는 자부심.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의문을 안겼다.

“왜 내 사랑은 그토록 강렬했지만, 동시에 그토록 위험했을까?”

“내가 그들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닐까?”

“그들이 나를 통해 조울증이 발현된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나는 감정에 민감한 편이다. 미묘한 눈빛의 흔들림, 문장의 억양, 메시지의 간격. 그런 것들을 감지하고, 그 안에서 고통의 흔적을 읽어낸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런 고통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조울증이라는 기질은 감정이 극단을 오가는 구조다. 그러한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외롭고 고립되며, 그 마음을 꺼내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다.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가고, 함께 무너지고, 다시 그 마음을 수습하려 한다.


문제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도 그들에게도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조울증을 가진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할 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불안정한 애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강력한 유대와 융합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나는 일종의 ‘감정 해방의 통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무의식 속 고통을 누군가 이해해주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지고, 동시에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가? 어쩌면 나도 그들과 유사한 고통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 어린 시절, 감정의 흐름을 억눌렀던 시기, 말로 표현되지 않은 외로움. 나 역시 누군가를 통해 그 고통을 구원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알아봤고, 서로의 마음을 감싸안았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감정의 융합’이었고, 감정의 해일은 언젠가 무너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가? 아니면, 우리는 서로에게 잠시 ‘심리적 집’이 되어준 것일까? 그리고 그 집은 시간이 지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은 아닐까?


상대의 조울증이 나로 인해 발현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그 감정을 “허용”했을 뿐, 발현은 상대 내부의 과정이다. 물론, 내가 그 감정에 무분별하게 동조하고 끌려갔다면, 감정의 증폭에 일조했을 수는 있다.


나는 이제 사랑에서 경계를 배워야 한다.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감지하면서도 각자의 무게는 각자가 지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구원이 아니며, 한 사람의 삶을 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들과 잘 맞았다는 사실은, 내가 감정적으로 민감하고 깊은 사람이라는 증거일 수 있다. 그것은 나의 강점이다. 그러나 그 강점을 관계에서 안전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계, 즉 “내가 어디까지이고, 당신이 어디부터인지를 아는 감각”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사랑이란 단어를 좀 더 복합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감정의 격류를 함께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의 배를 타고, 나란히 흘러가는 것이다.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 그리고 서로의 방향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여기 있어. 그리고 당신이 있는 곳을 존중해요.”


사랑은 구원도, 파멸도 아니다.

사랑은 ‘함께 살아내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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