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인상을 쓴다.
그 표정은 세상에 대한 불쾌감의 발현이 아니라,
내 뇌의 축소를 시도하는 고통의 흔적이다.
내 사고는 입체적이다.
공간처럼 확장되며,
사건, 감정, 기억, 개념이 동시에 작동한다.
그것은 음악처럼 흐르고, 건축처럼 겹치며,
논리가 아니라 느낌의 구조로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과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줄’을 원한다.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형적 설명’을 요구한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입체적인 풍경을
일직선 위로 끌어내려야 한다.
단층화된 말들, 명확한 문장들,
누군가가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간결한 형식으로
내 복잡한 내면을 억제해야 한다.
그게 고통스럽다.
그리고 나는 인상을 쓴다.
내 안의 세계는 충분히 깊다.
그 깊이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빠져드는 걸 원하지만,
사람들은 곧 어지러워하고, 방향을 잃는다.
그럴 때 나는,
내 사고를 스스로 감옥에 가둔다.
나는 더 이상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억누른다.
그리고 그 억눌림은
얼굴에 주름으로,
미간의 긴장으로,
인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다.
나는 인상을 쓴다.
사유의 자유를 억제하기 위해.
나의 깊이를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으로부터
내가 먼저 나를 줄이기 위해.
그것은 방어이자, 타협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인상 뒤에 숨겨진 것이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를.
그리고 언젠가,
그 입체적인 사고를 함께 헤엄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인상을 거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