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선택의 자유가 인간을 고립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by 신성규

개요


현대 정보사회는 정보의 과잉 속에서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 장치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개인은 점점 더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접하며 세계를 재구성한다. 본 에세이는 미디어 소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 인식 구조의 변화를 분석하고, 정보 선택의 자유가 인간의 인식에 어떤 자폐적 구조를 초래했는지를 철학적으로 고찰한다.



1. 서론: 정보 선택의 패러독스


‘선택할 수 있음’은 현대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자유의 상징이다. 특히 정보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뉴스, 영상, 글, 댓글 중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율성이라 믿는다. 그러나 질문해 보자. 그 선택은 과연 나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하도록 훈련된’ 것인가? 본 에세이는 정보 선택의 자유가 인간을 더 확장된 존재로 만들기는커녕, 더욱 자폐적이고 고립된 인식 구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역설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인식의 근본 구조에 대한 문제이다.



2. 미디어 소비의 역사적 전개


2.1 공영방송 시대: 동일한 세계의 소비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대중은 소수의 공영방송 또는 중앙 언론의 정보를 받아들였다. 정보의 편향성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편향은 전체 사회를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었고, 이로 인해 공동체적 사고가 가능했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이란 바로 이런 환경에서 등장할 수 있었다. 정보는 제한적이었지만, 그것이 공통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정보 부족은 오히려 집단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2.2 인터넷 초기: 해방과 혼란의 시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터넷은 지식의 민주화를 상징했다. 정보는 더 이상 중앙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포럼을 형성하며 탈중심적 구조를 만들어 갔다. 정치, 철학, 종교 등 이질적인 담론이 공존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사람에게 자발적 사고의 훈련장이 되었다. 정보가 혼란스럽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무질서함이 인간의 인식을 더 풍요롭게 했다.


2.3 알고리즘의 시대: 개인화된 감옥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공급되는 정보만을 본다. 유튜브의 추천, SNS의 뉴스피드, 네이버의 검색결과.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클릭, 시청 시간, 멈춤 동작을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더 적게, 더 비슷한 것만을 선택하고 있다. 이 구조는 아감벤이 말한 생명 정치적 통제처럼, 선택의 자유를 통해 오히려 자유를 억제하는 시스템이다. 정보는 풍부하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더욱 가난해진다.



3. 정보 자폐화의 인식론적 구조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인간의 집중력과 깊은 사고력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정보 과잉은 선택의 피로를 낳고, 인간은 점점 더 빠르고 짧은 정보에만 반응하게 된다. 이런 상태는 정보 소비를 인식의 행위가 아닌 소비의 행위로 전환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필터 버블’은 정보 자폐화를 가속화한다. 필터 버블은 자신과 유사한 관점의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접함으로써 자기 확증 편향을 강화시킨다. 이는 마치 칸트의 선험적 인식 구조처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형성하는데, 문제는 이 프레임이 타인과의 교차 가능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사고의 확장을 멈추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익숙한 것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내면화된다. 알고리즘은 더 이상 정보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설계하는 힘’이 된다.



4. 자폐적 인식의 사회적 결과


4.1 공동체의 해체


정보의 개인화는 결국 인식의 단절을 낳는다. 세대 간의 대화는 줄어들고,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서로 다른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같은 현실을 공유하지 못하고, 대화는 점점 ‘감정의 충돌’로 전락한다. 해겔이 말한 ‘타자의 인정’을 통해 자아가 형성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보 자폐는 타자와의 조우를 차단하고 자아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4.2 민주주의의 약화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를 통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을 접하고 타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이를 차단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고, 반대 의견은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는 칼 포퍼가 경계했던 폐쇄사회로의 회귀다. 열려 있는 인터넷은 결국 폐쇄된 사고 구조를 낳고, 사회는 점점 더 자기선택된 군중들로 쪼개진다.



5. 결론: 자유는 구조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자유롭게 정보를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자유는 인공지능이 설계한 시나리오 속에서 허락된 자유일 수 있다. 진정한 자유란, 내가 원하지 않던 정보에 열릴 수 있는 능력, 즉 타자의 관점에 침투할 수 있는 감수성을 의미한다.


정보 자폐의 시대에 인간이 다시 자유로워지려면, ‘선택된 정보’를 넘어서 ‘선택되지 않은 정보’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단지 정보 이용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태도의 문제이며, 윤리적 결단의 영역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5화자연 속의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