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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Apr 21. 2024

남프랑스 유기농 채소농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기

남프랑스 농장에서 일하게 됐다. 4월 25일부터 7월 25일까지 석달간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유기농 채소/허브 농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주에 8시간 남짓이다. 


본격적으로, 내 몸으로 하는 노동이다. 대여섯 번 정도 견습으로 일을 도왔다. 이런 것들. 


작은 화분에 씨앗 뿌리고 라벨 붙이기, 모종을 화분으로 옮긴 뒤 라벨 붙이기, 팔 수 있을 정도로 다 자란 케일, 브로콜리, 파 등을 수확해서 박스에 담기, 채소의 시든 부분을 가위로 손질해 고무줄로 묶어서 판매용으로 만들기 등을 했다. 일을 가르쳐 준 농부 프랑소와 씨가 아주 쉬운 일부터 점점 난도를 높여준 점이 고마웠다. 

나는 장갑을 끼지만, 흙과 식물을 감각하는 게 좋아서 맨손으로 하는 농부들도 많다. 


그 외에도, 간헐적 스케줄이 있다. 매주 월요일은 소도시에 마켓이 열리는데 한달에 한번은 참여할 예정이다. <마켓 재밌지요?>하고 물으니 (극 내향형인) 프랑소와 씨는 <응? 농사가 더 재밌지요.> 라고 하였다. 그렇구나. 외향형인 나는 마켓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응대하고 대화하는 게 훨씬 즐거운데 말이다. 


2년 전에 여름 축제에서 가스파초와 타불리 등을 판매한 적이 있다. 완판의 경험. <네 적성에 정말 딱이다. 너 정말 잘 판다. 그리고 네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모두가 말했던 기억이다. 짜릿했고....엄청나게 피곤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경험. 




초보 농부의 일터 준비물은 이러하다.


가장 중요: 찐하게 내린 아이스커피 한 통, 내 점심 도시락. 일전에 프랑소와 씨가 <채소와 쌀을 섞은 샐러드>를 주려고 해서 양손을 휘저으며 황급히 거절했다. 


쌀밥 샐러드라니.

사람이요. 

점심으로 이런 걸 먹을 상상을 하면요.

오전에 노동 의욕이 최저가 됩니다. 


중요: 챙이 넓은 모자, 니트릴 장갑, 두꺼운 장갑, 작은 칼과 가위, 땀을 닦을 손수건, 고무로 된 부츠, 튼튼한 바지. 수확할 때 땅에 무릎을 꿇는 일이 잦아서 무릎이 바지가 튼튼해야 한다. 


궁금한 점: 왜 프랑스 농부들은 과식하지 않는가! 프랑소와 씨가 한국에서 우핑(농가에서 일을 돕고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는 여행 프로그램)을 할 때는 하루에 네끼를 먹었다 한다. 점심과 저녁 사이 비빔국수 새참을 먹고 저녁엔 감자탕에 소주로 한바탕 뒷풀이를 해서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숙취를 이기고 아침 기상을 하는 건 좀 어려웠으나. 


그런데 아직까지 본 바로는 프랑스 농부들은 많이 먹지 않는 것 같다. 점심에 간단한 파스타나 샐러드를 먹고 일한다. 1주일에 한번 돌아가며 요리를 해서 다같이 충만하게 한끼를 나눈다고는 하는데, 대개는 각자 간소한 식사를 먹고 일하러 간다. 공동 간식이라곤 누군가 둔 쿠키 한 봉지, 낡은 커피 메이커에 늘 담긴 뜨뜨미지근한 커피 정도다. 


나는 너무 배고파서 11시에 내가 싸온 밥과 카레를 홀라당 까먹고 일 마치고 돌아와 라면을 한 냄비 또 끼려 먹었다. 다음에 일하러 갈 땐 먹을 걸 바리바리 챙겨가야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대야 가져가기를 잊지 말 것. 


한국인은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이 일을 좋아하느냐고 프랑스어 선생님이 질문했을 때 나는 멈칫한 뒤 대답했다.


<제 성향상, 제게 엄청나게 흥미롭고 신나는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하다 보면 완전히 몰두하게 됩니다. 더 빠르게 더 신속하게 하는 과정에 재미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일을 마친 뒤에 기분과 신체에 긍정적 변화가 따릅니다. 약간 기적같이 느껴질 정도로 변화가 커요. 세상 모든 일에 긍정적이 됩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일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요!> 


실제 프랑스어 대화는 이 정도로 정교하진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찰떡같이 이해해 주셨다.


<몸으로 하는 일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일주일에 고작 8시간인데, 계약서를 진지하게 쓴다는 점에서 나는 좀 놀라버린 것이다. 


계약서.


이건 한국에서의 나에게 볼드모트의 이름 같았다.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십년 넘게 일하면서 계약서를 요구하면 별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고, 계약서가 없어 고료를 못 받은 경험도 많았다. 그래서 한풀이를 하고자, 작년에 한국에 있을 때 프리랜서 협동조합에서 출판업계 계약 실태에 대해 인터뷰이를 자청했다. 계약과 페이 지급에 대해 프리랜서들이 모두 불을 토했던 인터뷰 현장이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는 경험이 나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번주에 4월 25일부터 3개월 동안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고용한 농부는 프랑소와 씨. 그런데 고용주는 Essor Maraîcher 에소 마레셰 이다. 


자, Maraîcher라는 개념을 보자. 이는 여러 종류의 채소를 재배하는 소규모 농부를 일컫는 단어다. 이를테면 미국의 광활한 옥수수 농장의 주인은  Maraîcher의 반대 개념이다. 한 가지 채소를 큰 규모로 재배하기 때문이다. <여러 채소를 재배하기 때문에 일의 재미를 느낍니다. 거대 자본이 아니라 소규모 자본이라 더 좋습니다>


아무튼 내 고용주가 에소 마레셰라는 기관인 것은, 프랑소와 씨가 아직 정식 농부가 아니라서 일종의 농업 테스트 공간인 에소 마레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입고 일하신다. 실제로 저렇게 바지 위헤 셔츠를 두르고 일할 수는 없다. 움직이면서 저 셔츠가 다 해질 것이야! 


프랑스의 제도들이 나에겐 아직 낯설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에소 마레셰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자. 

 <이 농업 테스트 공간을 통해 미래의 농부들은 지원을 받으면서 유기농 채소, 허브 재배, 과일 재배 및 가축 분야 프로젝트를 실제처럼 시행해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래의 농부들은 독립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가장 좋은 것은 농장과 농기계를 대여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농부들은 재배 방식과 농기계 운전을 배우는 것은 물론 회계, 행정, 은행과 협상하기, 다양한 납품처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을 배운다. 


온실 설치처럼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은 동료 농부들과 모여서 하기도 하고, 씨앗 주문을 함께 해서 배송비를 아끼기도 하는 것은 덤. 농부는 에소 마레셰에 고용된 형태이지만 월급을 받는 대신 자기가 재배한 채소를 판매한 마진을 가진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2년 안에 농업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에소 마레셰에 현재 근무하는 농부들은 모두 30대로 이전에 직장인, 연구원 등으로 일하다 전직한 사람들이다. 폴 씨는 곤충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였다고 한다. <곤충에 대해 잘 알면 농업에 도움이 되나요?>라고 질문했다니, <아니. 전혀 다른 분야다>라며 웃었다. 


신문에 실린 여성 농부의 인터뷰다. 그녀의 전직은 헤어 디자이너. 40세에 농부로 재출발을 했다. 트랙터를 모는 광경이 근사했던 기억. 

https://www.leparisien.fr/economie/salon-de-l-agriculture/ici-grandissent-les-paysans-de-demain-01-03-2024-HD4EUVSJCZG47LRRBFAFXEGMSU.php.


내 고용형태는 CDD(기간제 계약직)다. 이 계약서는 내 고용청 사이트에서 유효하다. 내가 3개월 동안 농장 업무를 한 것이 기록으로 보관되며, 실업 후 수당이 지급될 수 있다. 이외에도 장점이 있다. 이후 내가 단기 업무를 구할 때 이 기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농장에 일꾼이 많이 필요한 시즌에 단기 알바를 할 수도 있고. 


3개월 후인 8월은 남프랑스의 더위가 엄청나서 그때 내가 노동이 가능할지는 아직 결정할 수 없다. 3개월 동안 일하면서 예측해 볼 것이다. 신체능력이 그 정도일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대학 때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만 했다. 서빙, 공장, 농장, 청소 등의 일을 학교 때에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과외가 가성비 높다고 생각해서, 다른 알바는 안 했다. 하려다 말고 하려다 멈칫하다가 이십대가 지났다. 삼십대에 내 친구들이 학교 때 서빙 알바를 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해 볼 걸>라고 아쉬워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책상 앞에 하는 업무는 적성에 맞는 편이지만, 극강의 고독이긴 했다. 


다른 일을 더해서 투잡러가 되고 싶었을 때에는, 여러 직업을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미드 <더 베어>를 보았다. 레스토랑에서 주인공인 카르멘은 요리를 전담한다. 그런데 직원관리, 매장 관리, 청소, 수리, 서빙, 응대 등을 주도하는 건 다른 인물인 리치다. 물론 농땡이만 피우고 노가리만 까던 리치가 개과천선한 뒤 고급레스토랑에서 서버 교육을 다시 받고 난 뒤에 자신의 타고난 통찰력과 순발력, 친화력을 재확인한 후의 일이지만. 내가 리치처럼 능력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리치는 마약 중독자들을 한큐에 다스리는 방법을 안다) 비슷한 면이 좀 있어서 무척 인상깊게 보았다. 


한국에서 <알바>로 불리는 일들은 사실 프랑스에서는 장년이 되어서도 정식 직업으로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고나서다. 머리가 희끗한 카페 서버라든가.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그 일을 한다. 일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다른 것이 흥미롭고, 이 사회의 일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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