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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Feb 10. 2020

악쓰며 우는 아이 달래는 귓밥 파기

아들 덕에 온 식구의 귓밥을 파게 되다.

아들이 갓 돌이 지났을 때 나는 육아의 고단함에 지쳐서 해외여행을 울부짖었다. 뱃속에는 둘째까지 있었으니 나돌아 다니기 좋아하고, 자기 계발 좋아하는 내가 심신으로 매우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친구들이 일하러 가는 데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짜증 난다는 카톡만 봐도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주말에 자기들끼리 홍대 가서 저녁 먹는다고 막 수다 떠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이런 나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짧게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외여행이었다. 그게 어디가 되었든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벗어나서 평상시 보지 않던 풍경을 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서 생각이 멍해질 수 있는, 내 사고가 흐릿해질 수 있는 곳이면 그저 만족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오키나와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아이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골라서 예약을 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귀여운 자그마한 아기 수영복에 튜브를 챙겨서 갔다. 수영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닮아서 지성이는 당연히 수영을 좋아할 거라 믿으며 오키나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장을 향했다. 힘든 육아로 살이 쪽 빠진 나는 인생 최소의 몸무게를 뽐내며 비키니를 입고 지성이는 세상에서 제일 조그마한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매우 흡족했다. 거울에서 실컷 사진을 찍고 드디어 수영장으로 입수하는데, 어머나 세상에.... 지성이가 발을 물에 담그는 순간부터 울어재낀다. 잘 안 우는 순진한 아기가 뱃속에서 막 꺼낸 아기처럼 목젖을 있는 힘껏 울리면서 울어재끼는 데, 어떻게 달랠 방법이 없었다. 아... 그렇게 10 분도 수영장을 즐기지 못한 채, 방수 잘되는 재질로 만든 나의 새로 장만한 비키니에 물 한 방울 적시지 못한 채, 우리는 다시 허무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산책이나 하려고 유모차를 가지고 해변으로 갔는데... 이게 또 해변가는 모래 바닥이라서 유모차가 잘 밀어 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장아장 걷는 지성이 손을 잡고 천천히 바닷가를 걷는 것으로 우리는 다시 행복에너지를 꾸역꾸역 채우려는데, 이번에는 모기가 말썽이었다. 이잉~~~ 날아다니더니 가장 달콤하고 부드럽다는 아기 피부에 콕 입을 박은 것이다. 그것도 세 군데에... 아... 간지러워서 울면서 양쪽 다리를 벅벅 긁는 아기를 보니 산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엎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낮잠이나 재워야겠다 싶은데 아이는 간지러워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 울면서 양 쪽 다리가 피가 나도록 문질러댔다.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고, 차가운 수건으로 다리를 감싸고, 긴바지를 입혀도 아이는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도 다리를 벅벅 긁어대서 손톱 끝이 피로 다 빨갛게 물들었다. 이를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예전에 내가 귀 파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가 귀를 파주면 잠이 솔솔 왔었는데... 그래 지성이도 귀를 한 번 파줘볼까?'


그래서 호텔 화장실에 있는 면봉을 가지고 와서 지성이를 무릎에 눕히고 귀를 살살 문질렀다.  솜방망이 부분만 귓속에 살짝 넣고 아주 적은 힘으로 빙빙 돌리면 아주 기분이 좋다. 그래서 최대한 살살 지성이 귀에 손을 넣고 빙글빙글 돌려주었다. 간지러움에 몸 소리치던 지성이가 웃었다. 손가락 하나를 펴면서 '한 번만 더 하라'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그래 네가 다리만 안 긁을 수 있다면 엄마가 팔이 부러져도 손목이 나가떨어져도 하루 종일이라도 해줄 수 있지. 해줄게 해줄게.'

그렇게 나는 10분 넘게 아이의 양쪽 귀를 번갈아 면봉으로 살살 문질렀다. 드디어 잠과 간지러움과 사투를 벌이던 아이는 곤히 잠들었다. 아.....  그 무엇보다 값진,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샤넬백 같은 면봉이여!

에르메스 백보 다도 거 고귀한 면봉이여 만세!!!!!!




이 이야기는 벌써 오 년 전 이야기인데, 지난 주말 엄마 집에 갔다가 면봉이 뒹굴어 다니는 걸 보고는 귀 파던 게 생각이 나서 내가 말을 꺼냈다.

"지성아, 기억나? 지성이 엄청 간지러워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귀 파서 잠들었던 거? 오늘도 지성이 귀 파줄까?"

"네! 오래오래 파주세요. 살살 오래오래~"

그렇게 지성이를 한참 귀 파주 고나니 지성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할머니한테 쪼르르 다각 더니 말한다.

"할머니! 엄마한테 귀파달라고 하세요. 진짜 기분 좋아요."

온 가족이 지성이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우리 언니가 갑자기 내 무릎에 벌러덩

"야. 언니 좀 파줘봐. 얼마나 기분 좋은지 나도 한 번 느껴보자."

우리 가족은 또다시 우리 언니 말에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그날 언니 귀를 시작으로, 엄마 귀, 아빠 귀, 남편 귀, 조카 귀까지 모든 식구들의 귀를 파주었다. 엄마가 내 귀를 파준 적은 많아도 내가 엄마 귀를 파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기분이 묘했지만, 그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엄마 귓구멍은 예쁘고 날씬한 엄마를 닮아서 동그랗고 작고, 우리 아빠 귓구멍은 통크고 착한 아빠를 닮아 커다랗고 정직하게 생겼고, 멋쟁이 우리 언니는 귀도 예쁘게 생겼고, 우리 귀여운 조카는 귓모양도 오동통통 귀여웠다.


지성이의 한 마디에 내가 우리 집 식구들의 귀를 다 파는 날이 오다니. 다시 생각해도 참 즐거운 추억이다.

지성이 덕분에 또 하나의 즐겁고 잊지 못할 추억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러니 아이를 어찌 안 사랑할 수가 있냔 말이다. 오늘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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