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샤인 연주리 Apr 09. 2020

왜요? 왜요? 아이의 질문을 대하는 어른의 자세

호기심을 가진 아이가 스스로 공부한다. 호기심이 있는 아이가 행복하다.

아이와 부모의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두가 느끼는 육아의 행복한 순간은 ‘아이가 웃을 때’일 것이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무수히 했던 까꿍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까꿍을 하면 반응하고 웃는 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로는 아이를 볼때마다 까꿍은 한다. 얼굴을 두손으로 가렸다가 나타나며 까꿍, 유모차 옆에 숨었다가 까꿍을 하고, 아이 옆에 몸을 숨겼다가 까꿍. 다 큰 어른이 이 유치찬란한 까꿍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입술을 내밀어서 말하는 모습 자체가 사랑이요 행복이다. 아기가 엄마, 아빠, 맘마, 주세요라는 말을 처음 내뱉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동은 그 어떤 영화가 주는 감동의 크기보다 크다. 


아이와 대화가 되기 시작하고 나서는 어떠한가? 아이의 반짝거리는 눈, 세상을 향한 싶은 호기심이 느껴지는 깊이 있는 질문이 곧 기쁨이다.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왜요?’ ‘왜요?’ 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예쁜 모습이다. 


그럼 이 단계 중 어떤 단계의 육아가 가장 긴가하면 그건 당연히 대화하는 시기가 압도적으로 길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아이의 ‘왜요?’ 질문에 귀찮음과 짜증을 느낀다.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왜요?왜요?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속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의 짜증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이가 컸는데 유아적인 1차원 적인 질문만 해대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초등학생 자녀가 “엄마! 국회의원 선거는 왜 공휴일이예요? 모든 사람이 쉬면서까지 투표를 해야한느 중요한 일이예요? 왜 직접 선거하는 곳까지 가서 투표를 해야 해요?” 라고 조금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지면 부모는 아이의 눈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기꺼이 대답을 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일 것이다. 지금 아이의 “왜요?”질문에 짜증을 내고 있다면 아이의 질문의 수준이 부모의 기대이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이하의 질문이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그만 좀 물어봐! 나도 몰라!”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아이의 성장과 호기심과 행복을 막는 행위이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세상을 탐하는 길을 두 팔 벌려 막고 있는 꼴이다. 제발 세상을 궁금해 하지마! 호기심 갖지 말라고! 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제품의 원산지가 늘 궁금한 딸


‘고수의 공부법’으로 유명한 저자 한근태씨는 호기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호기심이 있으면 세상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없으면 세상이 지루하다. 호기심이 있어야 배우고 싶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보다 호기심을 적절하게 표현한 문구가 또 있을까. 그렇다. 아이는 호기심을 가져야 세상이 재미있고 무엇인가를 스스로 배우려 한다. 호기심이 있지 않으면 그냥 멍하니 남이 무언가 하는 것을 바라보는 ‘유튜브’가 그나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오락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한 후에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작은 ‘왜요? 엄마! 이게 뭐예요?’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귀찮아 하지 말고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즐겁게 대답을 해주어서 아이가 세상에 계속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컴퓨터나 오락, 스마트폰에 빠지지 않고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며 여러가지를 탐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4살짜리 아이가 집 앞을 걸어가다가 노란 산수유 꽃을 보고는 

“엄마! 이 꽃 좀 봐요! 이게 무슨 꽃이예요?” 라고 묻는다면 그냥 “노란 꽃이네!” 라고 답해서는 안된다. “이건 산수유 꽃이야. 노란 개 꼭 개나리 같지만 여러 개가 뭉쳐서 피는 건 산수유야. 그리고 가을이 되면 빠알간 구슬 같은 열매가 열려. 맛은 없는 데 그게 여자 몸에 좋아서 예전부터 약재로도 많이 쓰였어. 마트에서 산수유 음료수 파는 거 본 거 같은데 한 번 먹어볼래?” 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말해주는 게 좋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서 진짜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아이와 열매를 한 번 맛보면 아이에게 산수유는 단순한 나무가 아닌 자연의 변화와 쓰임을 알 수 있는 세상 공부가 될 것이다.


5살 숫자에 눈을 뜬 아이가 슈퍼 옆에 있는 은행의 1.5%를 보고는

“엄마! 이게 뭐예요? 1.5%가 뭐에요?” 라고 묻는다면 그냥 “은행 이자야.” 라고 답해서는 안된다.

1만원 현금을 찾아서 아이와 같이 은행에 들어가 통장을 개설하는 경험을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은행 직원에게 밖에 쓰여있는 1.5%가 뭐예요? 라고 묻고 답을 들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 외에도 은행의 여러가지를 보여주면서 아이의 질문에 최대한 정성스레 답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신의 질문이 옳은 질문이라는 확신을 갖고, 더 많은 질문을 통해서 더 많이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엄마가 자신의 질문을 부끄러워하거나 시끄럽다고 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질문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며 자존감이 낮아질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에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우리가 정성스럽게 친절하게 대답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아이가 어릴 때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면 아이가 커갈수록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아이의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력과 질문에 감동받고, 때로는 자극받고, 때로는 도움을 받는 일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때 아이와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기쁨은 까꿍 해서 웃음을 주던 아이에게 받던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이의 질문을 업신여기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자. 아이의 질문으로 호기심을 채워주면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세상을 즐거워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오늘 일곱살 아들이 내 책상위에 있는 ‘하루 10분 자존감을 높이는 기적의 대화’ 책 제목을 읽더니 질문을 한다. “하루 10분 대화를 한다구요? 하루에 10분이요? 엄마랑 나는 100분 넘게 대화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아들과 코로나로 어떤 회사가 불황에 빠지고, 어떤 회사가 기회를 맞아 오히려 더 매출이 성장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다. 그리고 각각 회사의 주가를 확인하면서 우리의 생각이 시장의 생각과 동일한지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 덕분에 오랜만에 주식을 몇 주 장만했다.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건 내가 인생에서 느껴본 가장 큰 감동이자 기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폰 없는 육아, 장비빨을 세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