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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Dec 06. 2021

오! 마이 비데, 브런치.  

본격 브런치 작가 신청 영업글

 연말을 맞이하여 2021년 브런치 활동 결산 리포트를 받았다.

'작가'라는 단어에 송구스러울 정도로 게으른 활동 내역이다.

그러나 숫자로 보여지는 보잘 것 없는 결과물과는 달리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간 2년여의 내 인생에서 굵직한 몫을 담당해주었다.


 브런치에 첫 글을 등재한 것은 2년전인 2019년 가을이다.

그 당시에는 '브런치'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먹는

브런치만 떠올릴 정도로 생소한 온라인 플랫폼이었는데 디지털 무식자인 내가 어떠한 경로로 이 곳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처해있던 상황이 참으로 별로였던 것만 기억할 뿐이다.




 힘든 시기였다.

 당시 가정이 휘청할 정도로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어디다가 '힘든 티'는 감히 낼 수도 없었고 내기도 싫었던 그 때, 그나마도 몇 안되는 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 수 없어 나만의 대나무 숲이 간절했던 때였다.


하필 그 감정쓰레기통이 어떻게 브런치 작가 신청 페이지였는지 모르겠다.

그당시 나는 개인 블로그도 없었고 따로 일기같은 걸 쓰고 있지도 않았기에 복잡한 심경을 토로할 마땅한 곳이 없었더랬다.

 

 보름동안 묵은 변비를 해소하듯 나는 글쓰기로 맘껏 징징거려보자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의 중반부터 아이큐는 나보다 20정도 더 높고 멘탈은 통 7중 스테인리스 정도 되는 또 다른 나(초자아)가 등장하여 찌질한 키보드 워리어인 내 손가락을 지배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시작했던 글의 결론은 지금의 '좋지 않은 상황'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인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거라는 마치  <달려라 하니> 식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결말로 끝이 났다. (그 글은 어쩐지 부끄러워 서랍속에 숨어있다)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생각보다 더 후련했다. 내가 원한건 그저 내 똥같은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변기통이었는데, 생각보다 룰루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어 숙변으로 가득했던 뱃속뿐만 아니라 Don't Go 까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삼일만에 작가승인 메일을 받았다.

그다지 감개무량하거나 기쁘진 않았다.  

당시의 나는 브런치의 작가심사란 그저 형식적인 절차이며 어느정도 분량만 채우면 어지간해서는 다 작가를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얼마전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주제로 한 PDF 형식의 전자책이 제법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알았고 정성껏 쓴 글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으나 칠전팔기로 작가승인을 받았다는 후기도 보게 되면서 알량하게도 내게 슬슬 '브런치 작가 부심'이란 것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흥, 나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한번에 작가 승인을 받아내었단 말이다
음화하하하아아하하!

따위의 옹졸한 치기가 전부었다면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한 달에 한두벌 꼴로 글을 등재하는 주제에 민망하지만, 브런치 작가라는 아이덴티티가 내게 의미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 존재감이 꽤 크다. 그것은 내게

'타인이 쓴 글을 읽지만 말고 너도 실컷 써봐.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고, 주제도 한정되어 있지 않아.

글이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칙칙해도 상관없어. 너의 찌질함, 초라함이 한껏 드러나도 좋아'

하고 온라인 상에 작지만 나만의 무대를 설치해준 것이었다.

하여 남의 눈치를 보고 싶지도 않은 고로 남편을 비롯한  어떤 지인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가 얼마전에 나름 큰맘먹고 심사숙고 끝에 소울메이트 명에게만 은밀한 초대를 했다. ( 대단한 영광이라고...ㅎㅎㅎ)




 돌이켜보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2년 동안 힘든 시기가 있을 적마다 브런치가 함께 해 주었다.


직장에서 나르시스트+소시오패스의 공격을 받을 때 나는 이 빌런을 어떻게 퇴치해야하는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것과 아이디어를 한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가장 여실히 깨달은 경험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정말로 빌런과의 마찰이 있었을 때 내가 썼던 글은 전략적인 각본이 되어 나를 도와주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그 빌런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나는 데쓰노트의 효과를 깨달은 라이토가 된 기분이었다. (그 '살생부' 역시 현재 작가의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ㅎㅎ)


 직장에서 담당 업무(Job description)를 변경한 후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시기가 있었다.

내 불안함의 원인은 주로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부족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는 일마다 실수 연발이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죽어라 죽어라 궁지로 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까이꺼'라는 글을 쓰며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아무리 ADHD끼가 다분한 인간이어도 회사일이라는게 무슨 미분,적분,인수분해 푸는 것도 아닌데,

뭘 쫄아 쫄기는....

뭐 이런 뉘앙스로 글을 쓴 후로, 나는 회사 업무가 마치 '눈높이 학습' 또는 '공문 수학'을 푸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렇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재미는 더럽게 없지만, 반복하다보면 아이큐가 100이 넘는 한 무리없이 할 수 있는 업무고 지능지수가 적어도 세자리임이 확실한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말이다. 공문수학을 푸는 기계가 되고 나니,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던 그 '보이지 않는 손' 역시  점점 그 위력을 잃어갔고 그동안의 고생에 보상이라도 하듯 직장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가장 반가운 사실은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불안증에서 많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결과들이 브런치에 글을 등재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비약이지 않나 생각하실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면 '그까이꺼'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직장에 관련된 아이디어는 전혀 없었다.

어디까지나 집안 살림 혐오 및 회피증을 극복하고자 쓴 글이었는데 글을 쓰는 도중에 의식의 흐름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확장이 되었고, 주책맞게 흔들리던 멘탈을 다잡아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브런치가 이처럼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어 준 예는 또 있다.

이민생활 10년이 되도록 그것이 남편이든 아내이든지 간에 배우자가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은 마음의 큰 짐이다. 내 경우에는 남편이 그랬다.

 

 잘 살아보겠다고 파이오니어 정신으로 온 이 곳에서 '아무래도 이 산이 아닌가벼' 하고 있는 그는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현실에 대한 좌절감에 괴로와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서로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자신의 분야에서 한자리씩 차지하여 골프 회원권 정도는 다들 갖고 있는 등 자신과는 이른바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워낙 스마트하고 성실했어서일까?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전직장에서는 반기별로 남편에게 이제 그만 들어와서 같이 일하자고 삼고초려를 했고 남편은 그럴 때마다 밤잠 못들며 존버냐 기러기냐 그것이 문제로다...하면서 햄릿처럼 갈등했다.

  

 나는 결코 내 남편에게 좋은 일이 생기게 해달라는 글을 쓴 적은 없다. 허나 내가 쓴 산만한 주제의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아이디어는 '내 삶에 대한 믿음과 감사'였다.


 '나도 내 삶을 부러워하기로 했다'라는 글(역시 오글거려서 발행취소) 을 쓰며 내 삶의 결핍을 떠올리며 애써 불행해하지 말자. 폼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없지만, 나도 자랑할만한 순간들이 꽤 있다. 그래서 나는 가상의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하지만 감사한 찰나를 포스팅하고 스스로 좋아요를 누르겠다.....

는 식의 뭔가 저세상 텐션의 글이었다.


 현재 남편은 더이상 이민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신 배관공일을 왜 진작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나는 그러한 후회 마저도 감사하다.

그만큼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고민하던 '진로'를 정해준 것은 나도, 브런치도 아닌 본인 스스로의 의지이지만,

어둡고 흔들리는 시절에, 램프의 요정 '브런치'는 나에게 남편을 이렇게 세뇌시키라고 했다.


" 지금 무슨일을 하던 당신은 이미 좋은 아빠이고 남편이고 훌륭한 가장이에요."

" 20대 중반의 비교적 이른나이에 아버지가 되어 쉼없이 달려왔으니, 지금은 조금 쉬었다 갈 자격이 충분히 있어요."

"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고 나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니 돈은 밥만 먹고 살 정도만 벌어도 돼요."

" 그러니깐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요."

" 당신의 행복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행복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지 마세요."


 배관공일을 시작한 후 남편은 이제는 전직장의 러브콜이 와도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책상에서 펜대 굴리던 시절에 그토록 좋아질 기미가 안보이던 지방간과 간수치가 이 일을 하면서 정상화가 된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램프의 요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벽기도' 거나, 명상 또는 일기거나, 아니면 블로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램프의 요정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거나, 아님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

나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았으니깐.

  

 어느날,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른 나에게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찾아와서는

'카톡이나 이메일로 애꿎은 사람 괴롭히지 말고 어디 한번 나한테 맘껏 징징거려보렴'

하고 멍석을 깔아주었다.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조회수를 높히는 제목 뽑기', '상단에 노출되는 검색 최적화' 등등의 디지털 마케팅 공식에는 1도 구애받지 않고 나는 긴 호흡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그리고 등재된 글을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면서 위로 받고 치유 받았으며 때로는 앙큼한 해결책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 자신 외에는 딱히 타겟을 두고 쓰지 않는 글임에도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이나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님들이 감사하게도 나만의 램프의 요정에게 힘을 보태주셨다.

확실히 드러누워 웹툰을 보거나 유튜브나 넷플리스에 시간을 보내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브런치, 그 돈도 안되는 거 왜 하냐고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얻은 위로와 새로운 다짐 등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내년에도 브런치 작가로서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내 삶에 대한 믿음과 감사가 이 곳에서 더 견고해지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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