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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May 16. 2022

NTP 들이여, 봉기하라.

귀챠니즘이 무기력해지도록, 

 한동안 NTP라는 종자에 대해 글을 쓰지 못했다. 

어느때인가 그야말로 '현타'라는 것이 왔기 때문이다. 


"나는 AB형이라 그런지 성격이 좀 양면적일 때가 있어"

"걔는 O형이라 그런지 역시 활발해"

 라는 식의 대사를 치면 그 사람이 즉각적으로 머리가 나빠 보이듯이 나역시 MBTI라는 성격적 유형으로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뭔가 유치해보였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별로였던 것은 나의 단점 및 약점에 대해 자꾸만 "냅둬유,,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께 이렇게 살다 갈래유" 하는 식의 합리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NTP 특유의 단점들, 

 기념일을 못 챙긴다.

 약속시간을 못 지킨다.

 정리정돈을 못한다.

 전화 공포증이 있다. 

등은 자칫 타인에게 민폐와 실망을 줄 수 있는 사항인데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나는 NTP형 인간이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발행하며 상대방이 이를 이해하고 포용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것이다.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N과 즉흥적인 P가 만나니 건망증이 생기고 덜렁거리게 되며 사회적으로 정해진 스테레오 타입, 이를테면 가족의 생일에는 이렇게 저렇게 축하하고 기념해줘야한다는 식의 '룰'에 취약한거구나 하며 내 자신을 합리화하게 되는 것이 그닥 바람직해보이지 않았다. 

 



 가끔 이십여년 전의 '김군'이 생각날 때가 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위한 세 가지 요건, 즉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아버지의 무관심 중에 김군이 받은 혜택이란 것은 아버지의 무관심밖에는 없는 친구였다. 서울 안에서도 학군이 좀 쳐지는 동네,(a.k.a 후진동네)에 살았으며, 부모님이 가방끈이 긴 편도 아니었고 집안 형편상 사교육의 혜택 또한 거의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워낙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동네 수학학원에서 광고효과를 위해 학원비를 받지 않고 그 친구를 원생으로 영입했을 정도였다. 


 이런 김군도 고등학교 때 자발적으로 사교육을 경험했을 때가 있었는데 완전 이과재질이었던 그가 영어만큼은 다른 과목에 비해 좀 쳐진다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청해서 어머니에게 영어과목 만큼은 좀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인 나의 이모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게 김군의 영어과외를 부탁했다. 


 여기서 그의 모친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역시 꽝이라는 것이 드러나는데, 과외선생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검증이라고는 울 모친(김군의 큰 이모님)의 허풍이 전부인 내게 단지 싼 값에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특한 아들의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맡겨버린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두 시간 동안 야부리를 털어서 용돈을 날로 벌어볼까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로 김군을 만났다. (이래서 내가 사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심 이 놈은 그동안 내가 과외알바하면서 만났던 아이들 보다는 똑똑한 놈이니 긴장을 하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군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과 부모님의 피같은 돈을 '날로 먹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수업 전에 미리 그날 분량을 예습한 후 자신이 영어 지문을 해석할 때 막혔던 부분이나, 단어의 쓰임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표시해놓고 오늘 나랑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댐벼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포자였던 나와 무척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홍성대 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수학의 정석>에서의 기억은 '집합'이후로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이 모든 과목의 평균을 깎어먹는 형국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방치했다. 


 보다 못한 필자의 모친께서는 역시 정보력이 시원챦았던지라 외숙모의 남동생의 친구라는 대학생을 섭외하여 내 수학 과외를 맡겼는데, 그때의 경험 역시 나의 사교육에 대한 불신에 한 몫 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부모님에게 그 때 딸라빚을 내서라도 용한 수학과외샘을 붙혀주었더라면,,,하고 원망할 때가 있다. 허나 나같은 싼마이 과외샘을 자기주도적으로 리드했던 김군을 생각하면 수학 과외 시간에 뭔가를 얻어보겠다는 마음은 1도 없는 무방비 상태로, 공책에 미적분의 풀이 과정을 쓰고 있는 수학과외쌤의 손가락털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내 자신과 비교되며 그딴 원망은 가당치도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원래 과외라는 것이 한두달 한다고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는 것이 아닌데, 김군 만큼은 수업의 횟수가 지날 수록 본인 스스로가 영어과목에 대해 전보다 편하게 느끼는 것이 보였고 놈과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나, 어쩌면 굉장히 유능한 과외선생일지 몰라"하는 뿌듯한 착각마저 들곤 했다. 그리고 애꿎은 울 엄마에게만 이모가 과외비를 너무 짜게 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과외비 인상은 커녕 나의 알바 자리는 김 군이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면서 저절로 끊기게 되었다.


 우등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메타인지력'이 높다는 것이다. 

메타인지란 본인이 뭘 잘하고 뭐가 부족한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인데, 한마디로 '주제파악'을 잘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제파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은 어떻게 살리고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야할 지에 대한 전략과 계획을 잘 짜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군은 메타인지력이 무척 좋았다. 

그는 '내가 이런걸 물어보면 바보같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나도 속으로 '아니, 이자슥 전교1등이라더니 여태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구?' 하고 의아해한 적도 꽤 있었다. 

 또한 빠듯한 집안 형편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돈드는 일은 부모에게 일체 입에도 올리지 않았던 그도, 

모친에게 과감하게 '나 영어 과외 필요함'이라고 요청하는 실행력이 있었다.




 MBTI가 나 자신을 합리화 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나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메타인지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테면 사무실에서 내 책상과 서랍은 무척 어지럽다. 그러나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그것이 나의 이미지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타격감이 없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서랍에서 누락된 업무 파일이 발견될 때는 가슴이 철렁하다. 허나 NTP형 기질 때문에 원래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다는 프레임을 씌우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서랍안이 항상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 서류를 버리지 못한다 

서류를 왜 버리지 못하나? - 문서세단기까지 가져가는 일이 귀챦다.

폐기해야할 문서를 문서세단기까지 가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빈박스를 구해와서 틈틈히 버릴 문서들을 넣는다 - 멍 때리고 싶을 때 그 박스를 문서세단기에 가져가서 파쇄한다. - 일하는 척 하면서 실컷 멍 때릴 수 있다. 


 시간 약속에 자주 늦는 편이다 - 나가기가 싫어서 늑장 부리다가 출발 자체를 늦게 한다. - 출발시간을 앞당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 나 자신에게 약속 시간을 앞당겨서 속인다. 즉 12시 약속이면 11 30분 약속이라고 거짓말한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11시 30인지 12시인지 헷갈려하는데, 그래서인지 12시 약속이라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일찍 집을 나서게 된다.     


 길 눈이 무슨 도로인식장애급으로 어둡다. - 나는 공간지각력 및 방향감각이 저능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 그런데 문자에는 강하다 - 동서남북이나 지형지물이 아닌, 도로명이나 간판명으로 길을 외우고 익히자 - 뚜렷한 도로명이 없는 곳은 내가 지어준다.(ex. 파리 날리는 감자탕집 사거리, 마리화나 냄새 많이 나는 2차선 도로 등등) 


 이런다고 어느날 갑자기 동네 아줌마들과 브런치 모임을 다니며 TV 드라마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NTP로서의 개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또한 자신의 약점 보다는 강점에 집중하라는 요즘 사조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도 아니다. 

김군이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할 것도 아니면서 영어공부에 공을 들였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약점이 강점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딱 여기까지다. 나의 단점인 게으름, 무심함, 덜렁거림, 빠른 싫증 등이 나름의 재기발랄함과 문제해결력과 임기응변력, 내 사람이다 싶으면 두 배로 잘해주려는 진국인 면과 같은 나의 매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영 힘을 못쓰도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P.S : 이제 불혹인 김군은 현재 제법 큰 회사의 임원으로 잘 나가고 있다. 나는 가끔 그를 만나면, " 이 Shaky, 내가 키웠쟎아. 껄껄껄" 하면서 찌질한 허세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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