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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Oct 19. 2022

돈 안들이고 사치부리기

본격 flex 권하는 글.


 당신도 3초만에 세계적인 전자 기업의 부회장을 능가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

바로 요플레를 따서 뚜껑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리면 된다. 혀로 핥아먹지 않고 말이다.

굴지의 재벌이 아무려면 추잡스럽게 요플레 뚜껑까지 핥아먹겠는가 하고 의아해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그분이 안 그러실지 모르겠지만 구치소 직원들의 목격담이 그렇다.


 내가 이따위 흰소리로 글을 여는 것은 이제 내가 말하고자하는 '사치 부리기'도 겨우 이 정도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혹시나 샤넬백을 염가에 구입하는 비법 등을 기대하셨을 분이 계실까봐서이다.


 돈 안쓰고 사치부린다는 것은 얼핏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나 농심에서 나온 삼양라면 같은 자가당착적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쭈쭈바 꼬다리를 빨아먹지 않고 그냥 버리는 쿨한 행위는 단 1원도 들지 않기 때문에 억대연봉자든,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삼백만원인 사람이든간에 누구든지 충분히 부릴 수 있는 Flex이다.


 사치는 영어로 luxury 또는 extravagance 로 나타내는데, luxury에는 고급스러움의 어감이 강하다 면 extravagance에는 분수에 안맞는 낭비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기에 본좌가 말하고자 하는 사치는 럭셔리로 규정하고자 한다.


사치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다.

재드래곤이 슈퍼카를 샀다고 설레임에 잠 못 이루진 않겠지만 취준생은 모닝을 사도 크게 무리를 한 것이다. 즉 럭셔리란 누구에게나 비슷한 만족감을 주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개인의 환경과 여건 등에 좌우되는 개념이다.  


또한 사치는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 바쁜 아침에 화장하고 출근하는 건 나한텐 사치야"

" 간단하게 샤워만 해야지 탕목욕은 나한텐 사치야"

" 아침밥은 나한텐 사치야"

" 흰색 옷은 애엄마인 나한텐 사치야"

" 개를 키우는 건 직장인한테는 사치지"


이런 패턴의 문장을 통해 사치란, 비일상적이며 여건상 어렵지만 내가 동경하는 무언가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에게 '사치'라고 규정해놓은 그것들이 현실적으로 그토록 갖기 힘들 것일까?




 직장인인 나는 주말만 되면 지박령이 된다.

집에서 가사노동 및 뒹굴거리기가 주요 업무이기 때문에 최대한 후줄근한 차림이 편하다.

예전에 시부모님댁에서 살 때 뵈었던 도우미 여사님이 깔쌈한 차림으로 출근하셔서는 업무 시작 전에 '일복'으로 갈아입으셨던 기억이 지금껏 나의 무의식을 지배해왔다. 집에 있을 때 번듯한 매무새는 나에게는 사치라고 말이다.


 지난 토요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잠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려 옷장을 열었다.

며칠전에 입다가 쳐박아놓았던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말이 블라우스지, 낡아서 그냥 집에서 헤벌레하게 입는 셔츠이다.

'오늘 하루만 입고 빨래통에 넣으면 되겠다.'하고 생각하면서 입는데, 세탁을 하지 않고 보관했을 때 피어나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안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창피하다)


 어짜피 이따가 김치찌개도 끓일 거고 생선도 구울 건데 세탁된 옷 입기 아깝쟎아, 시간이 지나면 냄새에 코가 익숙해져서 괜챦을거야... 라고 나자신(정확히는 내 후각)을 설득하며 단추를 하나씩 잠구는데,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오른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불쾌한 냄새를 애써 '견뎌내려고' 하는가?


 나도 모르게 그 냄새나는 블라우스를 신경질적으로 벗어서 빨래통에 던져버리고는 대신 세탁이 되어 곱게 개켜진 니트 원피스를 입었다.

몸에 너무 들러붙는게 부담스러워 생전 입지 않은 옷인데 신축성이 좋아 생각보다 착용감이 무척 편하다.무엇보다 방금 전과는 대조적으로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불쾌했던 내 콧구녕을 달래주었다.

이 별 것도 아닌 연회색 니트 원피스는 그동안 지박령의 유니폼으로는 '투머치'라고 생각했던 옷이었다.


 하루종일 문득문득 갓 세탁된 옷에서 나는 향기가 느껴질 적마다 나는 고급 호텔의 후레쉬한 침구를 덮고 있는 듯한 사치를 부리고 있다고 느꼈다.

 많은 자매님들 뿐만 아니라 깔끔한 형제님들에게 내가 '사치'라고 느끼는 이따위 감동은 그저 하챦고도 당연한 일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내가 앞전에 말했지 않은가? 사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주말의 '냄새 공격'은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사치'라고 규정했던 것들이 혹시 나 자신을 푸대접한 결과물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갖게 했다.

평소에는 타인이 내게서 좋은 냄새를 맡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향수를 뿌리면서 정작 나의 후각은 빨래감 하나 아끼는 것만도 못하게 존중하지 않는 아이러니라니.....


가장 신선하고 좋은 상태를 누리는 것도 사치이다.

나에게는 아끼다 똥 만드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  

이를 테면 밥을 새로 지어놓고도 한그릇 정도 남은 묵은 밥을 먹는 바람에 새 밥도 헌 밥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딱 먹기 좋게 익은 노란색 바나나를 두고 저승꽃이 잔뜩 핀 바나나를 처리하겠다고 먹는 바람에 결국 노란색 바나나도 점박이화 된달지,,,

선물 받은 배쓰밤을 부서질 때까지 안 쓰는 것 같은 절약도 아닌 궁상을 떤다.


돈이 들지 않는 사치는 대신에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락앤락 반찬통째로 식탁에 놓고 밥을 먹는 것 보다 예쁜 식기에 플레이팅 해서 먹는 것은 귀챦고 설겆이감도 나오고 시간도 걸린다. 그래서 바쁜 주부들은 혼밥을 하면서 이쁘게 차려먹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쁜 회사원에게 점심 시간에 주변을 산책하면서 햇볕 좀 쐬고 오라고 하면 그럴 여유가 어딨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밥먹고 퍼질러 앉아서 웹툰 보지 말고 바로 일어나 양치하고 나가면 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그냥 버려버리는 것도 사치이다. 요플레 뚜껑처럼.

내가 애기엄마였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애기가 먹다 남은 분유를 아깝다고 나에게 건내며 마셔버리라고 하셨다. "엄마는 이런거 먹는거야" 하고 인생의 진리인양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꼬릿한 분유냄새가 참 고역스러웠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남은 분유를 먹어치운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인   사람은 어디서든 남은 음식을 모조리 집에 싸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식당에서 여러사람이 먹다 남은 김치도 찌개 끓여 먹으면 된다며 싸간다. 비싼 물가와 지구 환경을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행위일 수는 있으나, 내가 어디까지나  안드는 사치라고 했지, 알뜰하고 실용적이며 환경까지 생각하는 사치라고는 하지 않았다. 사치란 애초에 필요가 아닌 쾌락을 위한 것이다. 나는 남은 음식을 싸와서 가뜩이나 비좁은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저놈을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호강한다는 기분이 들어야 사치이다.

 매일 버스로 출근하다가 늦잠을 자서 콜택시를 불러 회사를 갔다고 하자. 즐거운 기분이 들기는 커녕 늦잠자서 쓸데없는 지출을 했다는 후회가 든다면 이것은 사치가 아니다.

 똑같은 맥심모카골드인데 미용실에서 파마하면서 마시는 커피는 더 맛있다거나 아줌마들이 남이 해 준 밥은 다 맛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대접받는 기분, 즉 호강하기 때문이다. 비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호강이야말로 최상의 정신적 만족을 주는 사치이다.     

 



나는 물질적인 사치 이전에 일상적인 사치를 먼저 누릴 줄 알아야 더 큰 럭셔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하지 않는가.

어제 신은 양말을 하루 더 신는 것을 절약의 미덕으로 아는 사람에게 페라가모 로퍼가 과연 어울릴까?

전날 먹다 남은 잔반을 쓸어담아서 회사에 도시락으로 싸가는 사람이 천천히 오마카세를 음미할 수 있을까?

직장 선배 중 한 사람은 결혼 예물로 받은 오메가 시계를 신주단지 모시듯 장롱속에 고이 숨겨놓고 평상시에는 50대의 나이에 스와치를 차고 다닌다. 롤렉스라도 찬다 치면 심장마비를 걱정해야 할 형국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것을 맘껏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만족감이 저하된 삶은 정신적 허기를 불러오고 이는 곧 더 큰 결핍과 욕망을 불러올 것이다.

때문에 가끔은 비일상적인 즐거움을 위한 사치를 부려보고자 한다.

또 아는가. 가끔이 매일이 되어 사치스러움이 나의 일상이 될지.


 손님이 온다고 하면 나는 화장실을 밥 먹어도 손색 없을 정도의 상태로 치워놓고

음식도 신경쓸 것이며 물 한잔도 예쁜 컵에 내갈 것이다. 적어도 손님 맞이에 부끄럽지 않은 차림새로 우리집에서 최대한 유쾌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다.   

진정한 YOLO는 바로 나 자신을 귀한 손님 처럼 대접하는데서 비롯되지 않을까.


나의 사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지난 저녁에 먹다 남은 잔반 말고 유튜브 보고 배운 장어 덮밥 도시락 만들기.

식기 세척기 반 밖에 안 채웠는데 그냥 돌려버리기.

중년 아주머니의 발 뒤꿈치를 애기발 같이 부드럽게 만들기.

자기전 마스크팩 하고 음악 감상하기.

반점 없는 바나나만 먹기.

묵은 밥 대신 갓 지은 밥 먹기.

휴일에 집에서 '가사노동복' 말고 '라운지 웨어' 입고 있기.

브런치에 글이 잘 안 써지면 비록 대만제이지만 노트북을 들고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맛있는 조각케잌과 커피를 시켜놓고 디지털 노마드 코스프레하기.


아니, 돈 안드는 사치라면서? 하고 부들거리실 분은 안 계실거라 믿는다.

땡전한푼 안쓰는 사치가 아니라 돈 (별로) 안드는 사치라고 행간의 숨은 뜻을 파악할 수 있어야 맥락이 있는 독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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